산살바도르의 역사

산살바도르의 역사

가. 원주민

에스파냐가 이 지역을 정복하기 전에는 아메리카 원주민인 피필(Pipil) 족의 수도인 쿠스카틀란(Cuzcatlán)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확한 위치는 현재의 안티구오쿠스카틀란(Antiguo Cuscatlan)이다. 쿠스카틀란의 인구 규모에 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16세기 초엽 7,000명에서 3만 명 정도에 달했다. 쿠스카틀란은 ‘부와 권력’으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에스파냐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원주민의 인구는 급감했다. 1524년 페드로 데 알바라도가 쿠스카틀란을 정복한 후 쿠스카틀란의 원주민들은 주변의 산지 등으로 피신하거나, 천연두 등으로 사망했다.

나. 식민 시대

1525년 페드로 데 알바라도의 동생이자 부하인 곤살로 데 알바라도(Gonzalo de Alvarado)와 디에고 데 올긴(Diego de Holguín)이 산살바도르에 최초의 에스파냐 정착지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인디언의 반란과 화산 활동 등으로 정착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1528년 서남쪽으로 약 32㎞ 떨어진 곳으로 도시를 이전했다. 현재에도 구도시(Ciudad Vieja) 지역에는 관련 유적이 남아 있다.

아셀루아테 강변에 위치한 신도시는 토양이 비옥한 지역이었고, 디에고 데 올긴은 산살바도르 최초의 시장이 되었다. 1542년 엘살바도르가 과테말라 총독령(Capitanía General de Guatemala)에 편입된 후, 산살바도르가 1546년에 시로 공표되고, 쿠스카틀란 주의 주도가 되었다. 여러 차례의 지진과 화산 활동 등으로 도시의 인구 증가율이 높지 않아 1821년 독립 당시 산살바도르의 인구는 1만여 명에 불과했다.

다. 독립 이후

1821년, 현재의 엘살바도르가 포함된 과테말라 총독령이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했다. 1823년 중앙아메리카 5개국(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엘살바도르)은 독립을 선언하고 중앙아메리카 연방(República Federal de Centroamérica)을 구성했다. 산살바도르는 1834~1839년 중앙아메리카 연방의 수도가 되었다. 1838년 연방이 붕괴되면서 1839년부터 엘살바도르의 수도가 되었다. 1841년에는 공식적으로 독립한 엘살바도르(República de El Salvador)의 수도가 되었다.

주변 농촌 인구의 유입으로 산살바도르는 점차 확장되기 시작했다. 특히 커피 산업의 발전으로 인구가 늘어나면서 1890년에는 도시의 인구가 10만 명 가까이 증가했다. 그러나 1854년, 1873년, 1917년의 대지진, 1934년의 홍수 등 여러 차례의 자연재해를 겪으며 도시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 현재의 시가지는 1934년 이후 근대적 도시 계획을 통해 재건된 것이다. 도심 광장에서 뻗어 가는 방사형 도로망과 격자 모양의 시가지가 기능별로 분화된 것이 특징이다.

1930년대부터 엘살바도르는 계속되는 군사 쿠데타와 내전 등으로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었다. 이에 1987년 엘살바도르의 평화 조성에 관한 UN 결의안이 채택되었고, 1989년 정부와 게릴라 단체(FMLN)가 멕시코시티에서 내란 종식을 위한 대화 개시에 합의했다. 마침내 1992년 1월 16일 22년간의 내전을 종식하는 차풀테펙 평화협정(Acuerdos de Paz de Chapultepec)이 조인되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내전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던 수도 산살바도르는 1980년대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인구는 큰 폭으로 증가했고, 실업 또한 늘어났으며 슬럼이 확장되었다. 산살바도르는 20세기 들어서도 여러 차례 지진 피해를 입었다. 1917년에는 지진과 함께 산살바도르 화산이 분화하여 도시 정부가 일시적으로 산타테클라(Santa Tecla) 지역으로 옮기기도 했다. 1986년 10월에 발생한 산살바도르 지진으로 약 1,500명의 사망자와 20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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