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노선

자주노선

[ 自主路線 ]

시대명 현대

에 입각, 사회주의건설의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선.

북한은 이미 50년대 와 5개년계획 추진 당시 소련의 간섭과 56년 당시 중·소의 개입 등에 불만을 품어 왔고, 중·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주노선을 견지, 독자적인 사회주의적 공업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이러한 자주노선은 60년대 들어 특히 패권주의적 모습을 띠기 시작한 소련과의 대립을 불가피하게 하여 국제적인 논쟁과 상호비난을 불러일으켰다.

북한의 대소비난은 64년 평양에서 개최된 <제2회 아시아경제 세미나>가 채택한 <자력갱생에 의한 자립적 민족경제건설에 대하여>라는 소위 <평양선언>을 둘러싼 공방에서 절정에 달했다. <평양선언>은 코메콘을 강화하여 사회주의적 국제분업을 실현하려는 소련을 겨냥, 소련이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나라의 자립적 민족경제건설을 반대하고, 파행적인 식민지경제의 낡은 틀 안에 머무르게 하여 독립국의 자주적 발전과 번영의 길을 막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64년 8월 18일자 <프라우다>지는 <누구의 이익을 위함인가>라는 논설을 통해, 아시아·아프리카운동의 분열을 추구했다고 평양경제토론회를 비판했고, 이에 대해 <노동신문> 9월 7일자는 <왜 평양경제토론회의 성과를 헐뜯으려 하는가>라는 격렬한 반박문을 게재, 소련 경제원조의 종속적 성격을 비판했다.

북한은 또한 66년 8월 <노동신문>에 <자주성을 옹호하자!>라는 논설을 통해 중국의 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이 64년 <사회주의 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를 비롯해 67년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문제에 대하여>, 69년 <사회주의경제의 몇 가지 이론문제에 대하여> 등 일련의 이론적인 문건을 잇따라 발표하게 되는 것도 자주노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북한 사회주의건설의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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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제개발과 민중수탈
4. 북한의 자주노선
자주노선 지금 읽는 중
5. 데탕트와 박정권의 위기
6. 유신독재체제의 수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