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비료 헌납사건

한국비료 헌납사건

[ 韓國肥料獻納事件 ]

시대명 현대
연도 1966년

<한국비료>의 국유화과정에서 삼성재벌과 정부가 충돌한 사건. 66년 9월 22일 「한국비료를 국가에 바치기로 결심」했다는 이병철 삼성재벌 총수의 성명에서 발단되어 1년 2개월을 끌다 마침내 삼성 측이 주식 51%를 정부에 헌납함으로써 끝을 맺었다.

당초 이병철은 정부에 헌납의사를 밝히고 각서까지 썼으나 도중에 각서내용을 부인하는 한편, 사카린 원료 밀수사건(삼성재벌이 사카린 원료인 OTSA를 밀수, 시가 약 1,800만원에 상당하는 1,403포대를 시중에 유포시킨 사건. 이 사건으로 9월 22일 국회에서는 김두한 의원의 오물투척사건과 내각총사퇴가 일어났다)이나 헌납사건은 정부와 일부 과격한 언론의 조작극이며 문제의 각서도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밝힘으로써 정부에 정면도전했다.

이씨의 발언에 대해 「정부를 우롱하는 처사」라며 격노한 가 교섭을 맡았던 장기영 경제기획원 장관을 해임함으로써 정계에는 일대파문이 일었다. 결국 이병철은 개각 1주일 만인 67년 10월 11일 주식 51%를 헌납, 백기를 들었으나, 한국비료의 국유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시종일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 측이 장기간 이를 지연시킬 수 있었던 이유, 밀수사건에 대한 검찰 측의 불철저한 수사, 절호의 정치 이슈였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총선기간 중 내내 침묵을 지킨 이유 등 여러 가지 의혹이 밝혀지지 않은 채 이 사건은 묻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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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 의원이 오물을 퍼붓는 순간.

김두한 의원이 오물을 퍼붓는 순간. 출처: 한국근현대사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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