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개헌반대투쟁

3선개헌반대투쟁

[ 三選改憲反對鬪爭 ]

시대명 현대
연도 1968년 ~ 1969년

1968년 6월 12일 서울법대생 5백여 명이 <헌정수호 성토대회>를 개최한 이래 69년 12월까지 계속된 학생들의 개헌반대운동. 서울대에 이어 6월 27일에는 계명대에서 헌정수호 성토대회가 열렸고, 이후 69년까지 대구는 가장 격렬한 호헌 싸움터가 되었다. 특히 경북대에서는 박정권의 성격을 으로 규정, <황소파시즘 화형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 박정권은 휴교령·학과통폐합 등 온갖 수단을 동원, 학생들의 시위를 저지했고, 학생들은 가두시위·화형식·성토대회·단식투쟁 등 다양한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같은 학생들의 끈질긴 반독재 민주화투쟁에도 불구하고 69년 9월 안이 국회에서 변칙 통과되고, 이와 더불어 3선개헌반대투쟁도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60년대 학생운동은 막을 내렸다.

관련이미지

개헌반대에 퍼부어지는 경찰 곤봉세례.

개헌반대에 퍼부어지는 경찰 곤봉세례. 출처: 한국근현대사사전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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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민족분열과 예속의 심화
3선개헌반대투쟁 지금 읽는 중
3. 경제개발과 민중수탈
4. 북한의 자주노선
5. 데탕트와 박정권의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