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블로호 납북사건

푸에블로호 납북사건

[ -號拉北事件 ]

시대명 현대
연도 1968년

1968년 1월 23일 미해군정보수집 보조함 푸에블로호가 북한군에 의해 나포된 사건.

23일 낮 정오경 북한초계정이 푸에블로호에 접근, 정지할 것을 요구했으나 푸에블로호가 공해상에 있음을 이유로 이를 거절하자, 약 1시간 뒤 3척의 북한초계정과 2대의 미그기가 나타나 해군장교와 수병, 민간인 등 83명을 태운 푸에블로호를 나포했다. 이에 미국이 소련을 통한 외교교섭과 판문점회담을 추진하는 한편 엔터프라이즈 핵항공모함을 동해에 파견하는 등 군사적 예비조치를 취함으로써 한반도는 전쟁 일보직전의 초긴장 상태에 빠져들었다. 소련을 통한 외교교섭이 소련의 거부로 실패하자, 미국 측은 한국정부의 반발을 무릅쓴 채 2월 2일부터 판문점에서 북한당국과의 비밀협상에 들어갔다.

북한은 승무원 석방의 전제조건으로 △푸에블로호의 북한영해침범 시인
△영해침범 사과
△영해침범하지 않을 것 다짐 등을 주장하고,
미국은 승무원 석방을 선행조건으로 내세워 협상은 진전되지 못했다.

이후 28차에 걸친 미·북한간의 비밀협상 끝에, 미국 측이 영해침범을 시인하고 이를 사과하며 다시는 침범하지 않겠다는 문서에 서명함에 따라 납북된 지 만 11개월 만인 12월 23일 판문점을 통해 승무원 82명과 시체 1구가 송환됨으로써 푸에블로호 사건은 끝을 맺었다.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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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민족분열과 예속의 심화
3. 경제개발과 민중수탈
4. 북한의 자주노선
5. 데탕트와 박정권의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