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산 농민항쟁

고달산 농민항쟁

[ 高達山農民抗爭 ]

시대명 고대/남북국
연도 825년(헌덕왕 17년)

825년(헌덕왕 17) 고달산의 농민군이 과 함께 일으킨 농민항쟁. 의 반란이 실패한 후 피신해 있던 김헌창의 아들 김범문은 3년 뒤인 825년 수신(壽神)이 이끌던 고달산(지금의 여주)의 농민군 1백여 인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수도를 평양(平壤, 현재 서울부근의 남평양)에 정하려고 북한산주(北漢山州)를 공격했으나 북한산주 도독 총명(聰明)이 이끄는 토벌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사원의 대토지 소유의 진전, 게다가 국가의 가혹한 수탈과 귀족·토호·사원의 이중삼중의 착취와 폭압으로 농민들은 계속 몰락해갔다. 이리하여 8세기 말에 이미 산간지대에서는 토지에서 이탈된 농민들이 지배계급에 반대하는 항쟁을 벌였으며, 9세기에 이르러 이러한 농민들의 항쟁은 무장 항쟁으로 발전했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농민군을 「초적」이라 불렀는데, 김범문과 함께 일어났던 고달산 농민군의 투쟁은 9세기 초에 일어났던 대표적인 농민항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