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거인

진성여왕 때의 문인.

진성여왕 때 신라는 봉건사회의 모순이 격화되고 사회의 부패가 심화되어가는 가운데 여왕의 실정과 권신들의 권력남용 등으로 정치기강이 더욱 문란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888년 누군가 익명으로 시정(時政)을 비방하는 문자를 대로상에 게시한 사건이 있었다. 그 글은 다라니(陀羅尼)의 은어로 「남무망국(南無亡國) 찰리나제(刹尼那帝) 판니판니(判尼判尼) 소판니(蘇判尼) 우우삼아간(于于三阿干) 부이사파사(鳧伊裟婆詞)」라고 쓰인 것으로서, 찰리나제는 여왕을 말한 것이며, 판니판니 소판니는 두 소판, 즉 위홍과 대구화상을 가리키며, 우우삼아간은 세아간, 부이는 보호(鳧好, 위홍의 처)를 두고 한 말로서 이들이 나라를 망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글을 둘러싼 여론이 귀에 들어가자 진성여왕과 그 측근들은 범인을 잡느라고 혈안이 되었으며, 뜻을 잃은 문인의 소행으로 간주하여 용의자로 대야주(大耶州, 합천)의 왕거인을 지목하고 그를 체포, 죽이려 했다. 이때 왕거인이 억울한 심정을 시로 지어 옥의 벽에 썼는데 그날 저녁 벼락이 치고 우박이 쏟아지자 이를 두려워하여 곧 그를 놓아주었다고 하는 설화가 전해온다. 왕거인은 유교를 새로 받아들이면서 중앙 진골귀족 중심의 지배체제 모순에 대해 비판하던 신진 지식계급의 대표적 인물로 짐작된다.

왕거인 사건은 진골귀족 중심의 골품체제의 모순에 대한 당시 지식인들의 비판적 태도와, 그 비판의 결과 귀족들의 탄압을 받아 결국 밀려나고 마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짐작케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