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창

김헌창

[ 金憲昌 ]

시대 남북국
출생 - 사망 미상 ~ 822년(헌덕왕 14년)

헌덕왕 때 왕위계승 문제로 반란을 일으켰던 인물. 무열왕의 후손. 의 아들.

807년(애장왕 8)에는 시중이 되어 당시 의 후손 중 실력자인 김언승(金彦昇, 헌덕왕)에 버금가는 실력자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김언승이 애장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자 이듬해 정월에 시중직에서 밀려났다. 그 뒤 계속 헌덕왕파의 견제를 받아 무진주(武珍州, 지금의 광주)의 도독, 청주(菁州, 지금의 진주)의 도독을 거쳐 웅천주(熊川州, 지금의 공주) 도독으로 전보되었는데, 웅천주 도독으로 전보된 이듬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김헌창은 아버지 김주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들어 반란을 일으킨 후 신라조정에 항거해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고 국호를 장안(長安), 연호를 경운(慶雲)이라 했다.

반란세력은 무열왕계를 지지하는 지방 세력의 내응으로 순식간에 확산, 전국을 휩쓰는 내란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중앙에서 파견된 토벌군에 의해 한 달 만에 반란의 중요거점인 웅진성이 함락되자 김헌창은 자결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