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농민봉기

9세기 농민봉기

시대명 고대/남북국

9세기에 들어서면 ·사원의 대토지소유가 더욱 진전됨에 따라 몰락해가는 농민이 늘어났다. 여기에 국가의 가혹한 수취와 귀족·토호·사원의 이중적인 수탈로 인해 살기 어려워진 농민이 토지에서 이탈되는 경향이 나타나 8세기 말부터 「초적」이라 불리는 농민들의 투쟁이 전개되었으며, 9세기에는 무장 항쟁으로 발전했다. 815년 서쪽 주군에서 농민투쟁이 일어났고, 819년에는 전국 여러 지방에서 초적들의 봉기가 일어났으며, 825년에는 고달산 농민군이 과 함께 무장 항쟁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889년(진성여왕 3) 정부의 조세독촉으로 인해 농민들의 불만이 폭발, 9세기 말엽에는 전국적인 규모의 봉기로 확대되었다. 889년 사벌주(지금의 상주) 지방에서 원종과 애노를 지휘자로 하는 봉기가 일어난 것을 비롯, 896년에는 옛 지역에서 붉은 바지를 입은 적고적(赤袴賊)이라는 세력이 경주 부근까지 쳐들어오기도 했다.

이러한 반란군 중 강력한 세력은 원주의 (梁吉), 죽산의 (箕萱), 전주의 (甄萱) 그리고 양길의 부하였다가 자립한 (弓裔) 등이다. 이들은 반란세력을 규합하여 각지에 웅거, 커다란 세력을 형성하며 일정한 지역을 지배하는 지방정부적인 성격까지 띠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