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헌종]충청 감사 조운철이 이양선과 섬 백성이 문답한 것을 적은 종이와 이양인의 글을 베껴 올리다

[조선 헌종]충청 감사 조운철이 이양선과 섬 백성이 문답한 것을 적은 종이와 이양인의 글을 베껴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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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감사(忠淸監司) 조운철(趙雲澈)이 장계(狀啓)하여 이양선(異樣船)과 섬 백성이 문답한 것을 적은 종이와 이양인(異樣人)의 글을 베껴 올렸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대불랑서국(大佛朗西國) 수사 제독(水師提督) 흠명 도인도여도중국각전선 원수(欽命到印度與到中國各戰船元帥) 슬서이(瑟西爾)는 죄없이 살해된 것을 구문(究問)하는 일 때문에 알립니다. 살피건대, 기해년 에 불랑서인(佛朗西人)인 안묵이·사사당(沙斯當)·모인(慕印) 세 분이 있었습니다. 이 세 분은 우리나라에서 큰 덕망이 있다고 여기는 인사인데, 뜻밖에 귀 고려(貴高麗)에서 살해되었습니다. 대개 이 동방(東方)에서 본수(本帥)는 우리나라의 사서(士庶)를 돌보고 지키는 직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에 와서 그 세 분의 죄범(罪犯)이 무슨 조목에 해당되어 이러한 참혹한 죽음을 받아야 하였는지를 구문하였더니, 혹 귀 고려의 율법(律法)은 외국인이 입경(入境)하는 것을 금지하는데, 그 세 분이 입경하였으므로 살해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본수가 살피건대, 혹 한인(漢人)·만주인(滿州人)·일본인(日本人)으로서 귀 고려의 지경에 함부로 들어가는 자가 있더라도 데려다 보호하였다가 풀어보내어 지경을 나가게 하는 데 지나지 않으며, 몹시 괴롭히고 해치는 등의 일은 모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세 분은 한인·만주인·일본인을 대우하듯이 마찬가지로 대우하지 않았는지를 묻겠습니다. 생각하건대, 귀 고려의 중임(重任)을 몸에 진 대군자(大君子)는 우리 대불랑서 황제의 인덕(仁德)을 알지 못하실 것입니다마는, 우리나라의 사서는 고향에서 만만리(萬萬里) 떠나 있더라도 결단코 그에게 버림받아 그 은택을 함께 입지 못하게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 황제의 융숭한 은혜가 널리 퍼져서 그 나라의 사민(士民)에게 덮어 미치므로, 천하 만국(萬國)에 그 백성으로서 다른 나라에서 그른 짓을 하고 나쁜 짓을 하는 자가 있어 살인이나 방화 같은 폐단에 대하여 사실을 심사하여 죄를 다스렸으면 또한 구문할 수 없겠으나, 그 백성에게 죄가 없는데도 남이 가혹하게 해친 경우에는 우리 불랑서 황제를 크게 욕보인 것이어서 원한을 초래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대개 본수가 묻고 있는 우리나라의 어진 인사 세 분이 귀 고려에서 살해된 일은 아마도 귀 보상(貴輔相)께서 이제 곧 회답하실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내년에 우리나라의 전선(戰船)이 특별히 여기에 오거든 귀국에서 그때에 회답하시면 된다는 것을 아시기 거듭 바랍니다. 본수는 귀 보상에게 우리나라의 황제께서 그 사민을 덮어 감싸는 인덕을 다시 고합니다. 이제 이미 귀국에 일러서 밝혔거니와, 이제부터 이후에 우리나라의 사민을 가혹하게 해치는 일이 있으면, 귀 고려는 반드시 큰 재해를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해를 임시하여 위로 귀국의 국왕에서부터 아래로 대신(大臣)·백관(百官)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른 사람에게 원망을 돌릴 수 없고, 오직 자기가 불인(不仁)하고 불의(不義)하며 무례한 것을 원망할 수 있을 뿐일 것입니다. 이를 아시기 바랍니다. 구세(救世) 1천 8백 46년 5월 8일.˝ 하였고, 겉봉에는 고려국 보상 대인 고승(高麗國輔相大人高陞)이라 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헌종 12년 7월 3일(병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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