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현종]영상 정태화가 왜관에 시장을 열 때 폐단이 많은 것을 아뢰다

[조선 현종]영상 정태화가 왜관에 시장을 열 때 폐단이 많은 것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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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희정당에 나아가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영상 정태화가 아뢰기를, ˝왜관에 시장을 열 때 난잡한 폐단이 많습니다. 이 폐단을 염려하여 시장을 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필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관에 가서 몰래 사들여 연경(燕京)에 전매할 것입니다. 국법이 점점 해이되고 인심이 점점 악해져 잇속이 있는 곳엔 금령도 행해지지 않으니, 이것이 염려스럽습니다.˝ 하니, 우상 김수항이 아뢰기를, ˝폐단이 비록 이 지경에 이르게 되더라도 그 일을 덮어두고 문책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의당 동래(東萊)와 의주(義州)로 하여금 엄명하게 신칙해서 통렬히 금지시켜야 합니다.˝ 하니, 상이 그렇게 여겼다. 김수항이 아뢰기를, ˝윤경교(尹敬敎)의 일에 대해 해가 지난 뒤에 무거운 법을 적용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신은 말이 졸렬하고 정성이 얕아서 상의 뜻을 돌이키지 못하였으니 실로 황공스럽기만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교의 일은 하루아침에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근일의 풍파는 실로 경교에게서 말미암은 것이다. 이상(李翔)이 이미 삭탈 관작의 벌을 받았는데, 경교가 어찌 임소에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정태화가 아뢰?? ˝신은 비록 늙었으나 경교의 일에 있어서는 결단코 지나친 줄로 압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명철한 임금의 마음은 이치로써 결정한다.˝고 하였으므로 신의 생각엔 이치로서 상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으리라고 여기었으나 신은 말을 잘하지 못하였습니다. 김수항의 말이 매우 명백하니, 성상께서는 다시 생각하시고 헤아려 처리하소서.˝ 하자, 김수항이 아뢰기를, ˝정태화가 어찌 사사로이 경교를 옹호하겠습니까. 옛사람이 말하기를 ˝노여움을 잊으면 마음이 공평해진다.˝고 하였으니, 마음을 평정시켜 느긋하게 생각해 보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상의 말이 과연 거만스러움에서 나온 것인가˝? 하자, 김수항이 아뢰기를, ˝인정이란 그리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이상이 어찌 대신을 적신(賊臣)에다 비교하였겠습니까. 신의 생각엔, 이름자를 빌려 쓰다가 자신도 모르게 망발한 것으로 여깁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소장의 말뜻은 글을 잘못 쓴 소치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가 인용한 주운(朱雲)의 말에 대해 괴이하고 망령되어 엉뚱하다고 여기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반드시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하였다. 김수항이 아뢰기를, ˝상의 하교에 ˝굳게 결탁하여 괴롭히고 해쳤다.˝는 등의 말씀이 계셨습니다만, 어찌 이상 등이 남과 서로 약속해서 이 일을 만들었겠습니까. 임금이 벌을 씀에 있어 억지로 죄명을 정해서야 되겠습니까. 정태화는 머리털이 하얀 노신으로 나라를 위한 정성이 다른 사람보다 각별한데 그가 진달한 말이 이와 같으니, 의당 살피시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 하자, 정태화가 아뢰기를, ˝볼품없는 신이 외람되게 이 직위에 있어 세 조정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신이 감히 다시 진달하지 못한 것은, 만약 외부 사람들이, 신이 누누이 말씀드렸으나 가납되지 못하였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신의 마음이 황공스럽고 부끄러울 뿐만 아니라 성상의 덕에 손상이 있을까 염려되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늙은 이 신하로 말미암아 성상의 덕에 거듭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신의 말이 이와 같으니, 경교를 안치시키지 말고 삭탈 관작하여 성문 밖으로 내쫓으라.˝ 하였다. 장령 임규가 아뢰기를, ˝지금 대신의 말로 인해 윤경교의 벌을 감등시켜 삭탈 관작하고 내쫓으라는 명이 계셨으니, 성상의 덕이 참으로 큽니다. 그러나 당초 외직에 제수한 것이 이미 그의 죄가 아니라면 완전히 사면시켜 성상의 덕이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삭탈 관작하여 내쫓으라는 명을 도로 거두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 생각은 그렇지 않으나 대신의 진달이 이러하므로 감등시킨 것이다. 꼭 직임을 제수해야만 후련하게 여기겠는가˝? 하였다. 수항이 아뢰기를, ˝신이 엉뚱하게도 어울리지 않는 직임을 맡아, 신의 형 호판 수흥과 비국을 출입할 때 좌차(坐次)와 예모(禮貌)에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신의 형이 연일 소를 올리고 나오지 않고 있으니<중략>출처 : 『조선왕조실록』 현종개수실록 13년 6월 16일(경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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