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세병관

통영 세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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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병관은 이경준(李慶濬) 제6대 통제사가 두릉포에서 통제영을 이곳으로 옮긴 이듬해인 조선 선조 37년(1604)에 완공한 통제영의 중심건물이다. 이 건물은 창건 후 약 290년 동안 3도(경상·전라·충청도) 수군을 총 지휘했던 곳으로 그 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치긴 했지만 아직도 멀리 남해를 바라보며 당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정면 9칸·측면 5칸 규모의 웅장한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건물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중앙 뒷면에 약 45㎝ 정도 높은 단을 설치하여 궐패(闕牌)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 위로 홍살을 세웠고, 후면 내진주열 중방 하부에는 머름을 설치하여 분합문을 달고 중방 위로는 판벽으로 마감하여 무인도(武人圖)를 그렸으며 천장은 소란반자를 설치하였다. 세병관은 17세기초에 건립된 목조단층 건물로 경복궁경회루(국보), 여수진남관(국보)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하고,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그 역사성과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사진

1953년 퇴락한 세병관

1953년 퇴락한 세병관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 군사상의 취약점을 고려하여 만든 통제사의 본영이 있던 터이다. 당시의 통제영 건물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세병관 뿐이며,통제사 내아인 운주당·경무당 지역에는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이, 통제사 집무실이었던 백화당과 관아에서 사용하던 각종 물품을 납품한 공고(12공방·선자방)지역에는 통영초등학교가, 통제사 참모장의 군영인 중영 및 중영내아 등 지역에는 통영세무서가, 그 밖에 파취헌·분뇨정 등의 지역에는 충렬여자중·상업고등학교가 각각 위치하는 등 통제영지 대부분의 지역에 주요 관공서가 들어서 있다.

통영 통제영지 세병관

통영 통제영지 세병관 2002년 10월 14일 국보로 승격 지정되었다. 크기는 정면 9칸 112자, 측면 6칸 56자이다. 단층 팔작지붕이다. 1603년(선조 36) 충무공 이순신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다. 완성된 이후에는 삼도수군통제사영(三道水軍統制使營)의 건물로 사용되었다. 4면이 모두 개방되고 내부도 막힌 벽이 없이 기둥만 정연하게 배열되었다. 전후면에서 안쪽으로 제2주열(柱列)에 각각 고주(高柱)를 한 줄로 세워 그 위에 대량(大樑)을 걸쳤으며 이 고주와 변주(邊柱)는 퇴량(退樑)으로 서로 연결하였다. 건물 측면의 가운데 있는 기둥에서부터 대량에 걸쳐 충량(衝樑)이 배치되었다.

통영 통제영지 세병관 간판

통영 통제영지 세병관 간판 세병관 간판의 모습이다. 두보의 시 ''세병마행(洗兵馬行)''에서 따 왔다고 한다.

통영 정화사업 전의 세병관

통영 정화사업 전의 세병관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 군사상의 취약점을 고려하여 만든 통제사의 본영이 있던 터이다. 당시의 통제영 건물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세병관 뿐이며,통제사 내아인 운주당·경무당 지역에는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이, 통제사 집무실이었던 백화당과 관아에서 사용하던 각종 물품을 납품한 공고(12공방·선자방)지역에는 통영초등학교가, 통제사 참모장의 군영인 중영 및 중영내아 등 지역에는 통영세무서가, 그 밖에 파취헌·분뇨정 등의 지역에는 충렬여자중·상업고등학교가 각각 위치하는 등 통제영지 대부분의 지역에 주요 관공서가 들어서 있다.

통영 이충무공유적지 세병관

통영 이충무공유적지 세병관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 군사상의 취약점을 고려하여 만든 통제사의 본영이 있던 터이다. 당시의 통제영 건물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세병관 뿐이며,통제사 내아인 운주당·경무당 지역에는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이, 통제사 집무실이었던 백화당과 관아에서 사용하던 각종 물품을 납품한 공고(12공방·선자방)지역에는 통영초등학교가, 통제사 참모장의 군영인 중영 및 중영내아 등 지역에는 통영세무서가, 그 밖에 파취헌·분뇨정 등의 지역에는 충렬여자중·상업고등학교가 각각 위치하는 등 통제영지 대부분의 지역에 주요 관공서가 들어서 있다.

통영 세병관(원경)

통영 세병관(원경) 세병관은 이경준(李慶濬) 제6대 통제사가 통제영을 이 고장 두룡포에 옮겨온 이듬해인 선조 38년(1605) 그해 7월 14일에 준공한 통제영의 객사(客舍)이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된 웅장한 건물로 모든 칸에는 창호나 벽체를 만들지 않고 통칸(通間)으로 개방하였다. 우물마루로 된 평면바닥의 중앙일부를 한단 올려 놓았다. 장대석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기둥 윗몸은 창방(昌枋)으로 결구(結構)하였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식(柱心包式)이지만, 익공식(翼工式) 수법과 다포식(多包式) 수법이 많이 보인다.

1900년대 통영 세병관 통영성 남문

1900년대 통영 세병관 통영성 남문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 군사상의 취약점을 고려하여 만든 통제사의 본영이 있던 터이다. 당시의 통제영 건물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세병관 뿐이며,통제사 내아인 운주당·경무당 지역에는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이, 통제사 집무실이었던 백화당과 관아에서 사용하던 각종 물품을 납품한 공고(12공방·선자방)지역에는 통영초등학교가, 통제사 참모장의 군영인 중영 및 중영내아 등 지역에는 통영세무서가, 그 밖에 파취헌·분뇨정 등의 지역에는 충렬여자중·상업고등학교가 각각 위치하는 등 통제영지 대부분의 지역에 주요 관공서가 들어서 있다.

1900년대 통영 세병관 통영성 남문

1900년대 통영 세병관 통영성 남문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 군사상의 취약점을 고려하여 만든 통제사의 본영이 있던 터이다. 당시의 통제영 건물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세병관 뿐이며,통제사 내아인 운주당·경무당 지역에는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이, 통제사 집무실이었던 백화당과 관아에서 사용하던 각종 물품을 납품한 공고(12공방·선자방)지역에는 통영초등학교가, 통제사 참모장의 군영인 중영 및 중영내아 등 지역에는 통영세무서가, 그 밖에 파취헌·분뇨정 등의 지역에는 충렬여자중·상업고등학교가 각각 위치하는 등 통제영지 대부분의 지역에 주요 관공서가 들어서 있다.

통영 세병관 입구

통영 세병관 입구 세병관 입구의 모습이다. 세병관은 이경준(李慶濬) 제6대 통제사가 통제영을 이 고장 두룡포에 옮겨온 이듬해인 선조 38년(1605) 그해 7월 14일에 준공한 통제영의 객사(客舍)이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된 웅장한 건물로 모든 칸에는 창호나 벽체를 만들지 않고 통칸(通間)으로 개방하였다. 우물마루로 된 평면바닥의 중앙일부를 한단 올려 놓았다. 장대석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기둥 윗몸은 창방(昌枋)으로 결구(結構)하였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식(柱心包式)이지만, 익공식(翼工式) 수법과 다포식(多包式) 수법이 많이 보인다.

통영 세병관 밑 중영

통영 세병관 밑 중영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 군사상의 취약점을 고려하여 만든 통제사의 본영이 있던 터이다. 당시의 통제영 건물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세병관 뿐이며,통제사 내아인 운주당·경무당 지역에는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이, 통제사 집무실이었던 백화당과 관아에서 사용하던 각종 물품을 납품한 공고(12공방·선자방)지역에는 통영초등학교가, 통제사 참모장의 군영인 중영 및 중영내아 등 지역에는 통영세무서가, 그 밖에 파취헌·분뇨정 등의 지역에는 충렬여자중·상업고등학교가 각각 위치하는 등 통제영지 대부분의 지역에 주요 관공서가 들어서 있다.

통영 세병관 망일루

통영 세병관 망일루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 군사상의 취약점을 고려하여 만든 통제사의 본영이 있던 터이다. 당시의 통제영 건물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세병관 뿐이며,통제사 내아인 운주당·경무당 지역에는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이, 통제사 집무실이었던 백화당과 관아에서 사용하던 각종 물품을 납품한 공고(12공방·선자방)지역에는 통영초등학교가, 통제사 참모장의 군영인 중영 및 중영내아 등 지역에는 통영세무서가, 그 밖에 파취헌·분뇨정 등의 지역에는 충렬여자중·상업고등학교가 각각 위치하는 등 통제영지 대부분의 지역에 주요 관공서가 들어서 있다.

통영 세병관 망궐례

통영 세병관 망궐례 망궐례는 세병관에서 수행하던 배례의식이다. 임금에 대한 공경과 충성을 나타내는 의식으로 초하루와 보름, 두 번의 정규례 외에 설, 단오, 추석 등 명절과 왕과 왕비의 생일 등 특별한 날에 올렸는데, 통제사가 주재했다. 이는 궁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근무하는 통제사(뿐만 아니라 관찰사, 목사, 부사 등도 해당)가 임금을 직접 배알할 수 없었기에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셔놓고 의식을 행한 것이다.

통영 세병관 궐패단

통영 세병관 궐패단 세병관 내부에 궐패를 모시는 궐패단의 모습이다. 궐패단은 여타의 공간과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마루보다 단이 높고, 상부는 우물천장으로 막았으며, 좌우에 홍살문을 두어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고 의식을 행할 때는 분합문을 내려 다른 공간과 확실히 구분하였다.

통영 세병관 수항루

통영 세병관 수항루 세병관 입구에 있는 수항루는 임진왜란의 승첩기념으로 건립된 누각이다.

통영 세병관

통영 세병관 세병관은 1605년 이경준 통제사에 의해 준공되었으며,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 팔작지붕이다. 1층의 단일 건물로는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함께 국내 최대 건물로 손꼽힌다.

통영 세병관

통영 세병관 세병관은 1605년 이경준 통제사에 의해 준공되었으며,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 팔작지붕이다. 1층의 단일 건물로는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함께 국내 최대 건물로 손꼽힌다.

통영 세병관

통영 세병관 세병관은 1605년 이경준 통제사에 의해 준공되었으며,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 팔작지붕이다. 1층의 단일 건물로는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함께 국내 최대 건물로 손꼽힌다.

통영 세병관 지과문

통영 세병관 지과문 세병관의 두 번째 문인 지과문(止戈門)은 ''창을 그친다''는 의미인데 창(무력)을 그만 사용하고 싶다는 것은 곧 평화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통영 세병관 망일루

통영 세병관 망일루 세병관의 첫 관문이자 정문인 망일루(望日樓) 아래 계단은 24개로써 24절기를 상징한다. 400여년 전의 그 돌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망일루는 ''해를 바라다 보는 누각''이란 뜻이며, 해는 임금을 상징한다.

동영상

통영 세병관 세병관은 1605년 이경준 통제사에 의해 준공되었으며,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 팔작지붕이다. 1층의 단일 건물로는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함께 국내 최대 건물로 손꼽힌다.

출처: 문화원형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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