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 張德秀 ]
시대 | 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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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사망 | 1895년 ~ 1947년 |
이명 | 호 : 설산(雪山) |
직업 | 정치가 |
정치가. 호는 설산(雪山). 황해도 재령 사람. 1916년 와세다[早稲田]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한 후 중국으로 건너갔다. 18년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국내 독립지사와 연락을 취할 목적으로 와 함께 국내에 들어오다가 검거되었다. 다음 해 과 함께 일본정부를 방문, 한국독립의 타당성을 역설했으며, 20년 <동아일보> 초대 주간이 된 데 이어, 노동공제회(勞動共濟會) 간부, 보성전문 교수를 지냈다. 28년 미국에 건너가 콜럼비아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36년 <동아일보> 부사장을 지냈다. 해방 후 ··김병로(金炳魯) 등과 을 창당, 외교부장·정치부장을 역임했다. 의 단정(單政)노선을 지지하여 등 임시정부계와 급격히 관계가 악화되던 중, 47년 12월 2일 종로서 경사 박광옥(朴光玉), 무직청년 배희범(裵熙範)에 의해 제기동 자택에서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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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수 1895년-1947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