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진주

미군진주

[ 美軍進駐 ]

시대명 현대
연도 1945년

1945년 9월 8일 일본군의 항복을 받기 위해 북위 38도 이남 지역에 미군이 진주한 일. 9월 8일 하지(Hodge, John) 중장이 이끌고 인천에 상륙,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제24군단 4·6·7보병사단으로 약 7만 2천명이었으며, 같은 해 11월까지 남한 주요지역에 고루 배치되었다. 이에 앞서 9월 7일, 미국 태평양 방면 육군총사령관 맥아더는 <조선인민에게 고함>이라는 포고 제1호를 발표,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와 조선인민에 대한 통치의 전체 권한은 당분간 본관의 권한하에 시행된다」 「점령군에 대한 반항행위나 질서를 교란하는 자는 가차없이 엄벌에 처한다」라고 하면서 당시 민중의 생각과는 달리,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으로서의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사실상 미군은 서울에 진주할 때까지 조선에 대한 확실한 정책을 갖고 있지 못했다. 하지는 총독통치를 그대로 두려고 생각하기까지 했으며, 총독부의 행정기구와 그 조선인 관리를 그대로 인계받아 운영했다. 진주 다음날인 9월 9일, 진주군 사령관 하지와 조선총독 아베(阿部信行)는 항복조인식을 가졌고, 이로부터 3년간에 걸친 미 군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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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부 앞에서 가두행진하는 미군.

총독부 앞에서 가두행진하는 미군. 출처: 한국근현대사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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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군정과 친일파의 득세
미군진주 지금 읽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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