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공산당 재건

조선공산당 재건

[ 朝鮮共産黨再建 ]

시대명 현대
연도 1945년

1945년 9월 11일, 일제하에서 해산되었던 이 재건된 일. 28년 조선공산당이 해산된 이래 꾸준한 당재건운동이 있었으나, 통일적인 당조직을 건설하지 못한 채 몇 개의 공산주의 그룹으로 분산, 비합법적인 활동을 계속해왔다. 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이들은 합법적인 활동을 시작, 우선 8월 16일 전 서울청년회계의 이영(李英)·정백(鄭伯)·최익한(崔益漢) 등이 종로 장안빌딩에 모여 조선 공산당 재건을 선언했다(장안파 공산당). 한편 을 중심으로 한 경성콤그룹계는 9월 8일 서울 계동 홍증식의 집에서 열성자대회를 열고 조선 공산당 재건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재건파 공산당). 그러자 장안파는 8월 24일 당해체를 결의, 재건파를 중심으로 9월 11일 양 파의 통일된 조선공산당이 정식으로 재건되었다.

주요 부서와 인물은 총비서 박헌영, 정치국 박헌영··이주하(李舟河)·이무정(李武亭)·강진(姜進)·최창익(崔昌益)·이승엽(李承燁)·권오직(權五稷), 조직국 박헌영·이현상(李鉉相)·김삼룡(金三龍)·김형선(金炯善), 서기국 이주하·허성택(許成澤)·김태준(金台俊)·김귀훈·이순금(李順今)·강문석(姜文錫) 등이다. 투쟁목표로 ①노동자·농민·도시빈민·병사·인텔리겐차 등 일반 근로인민의 정치·경제·사회적 이익을 옹호하여 생활의 급진적 개선을 위해 투쟁한다 ②조선민족의 완전한 해방과 봉건잔재 일소, 자유발전을 위해 끝까지 투쟁한다 ③혁명적 민주주의적 인민정부 확립을 위해 싸운다 등을 제시했다. 재건된 조선공산당은 곧 활발한 활동을 전개, 전평(全評)·전농(全農)·부총(婦總)·청총(靑總) 등 외곽 대중조직을 건설, 대중운동을 이끌어가는 한편, (민전(民戰))을 결성, 통일전선운동을 주도했다.

해방 직후 다양한 정치세력이 등장했으나, 대부분 튼튼한 대중적 토대가 없는 명망가들 중심의 조직이었으므로, 대중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 세력은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미 군정에 의해 이들의 활동은 탄압을 받고 불법화되었다. 46년 11월 조선 공산당은 ·신민당과 함께 으로 통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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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군정과 친일파의 득세
조선공산당 재건 지금 읽는 중
2. 남한단독정부 수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