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형

여운형

[ 呂運亨 ]

시대 현대
출생 - 사망 1886년 ~ 1947년
이명 : 몽양(夢陽)
직업 독립운동가, 정치가

독립운동가·정치가. 호는 몽양(夢陽). 경기도 양평 사람. 15살 때 에 입학했다가 관립 우체학교에 들어갔으나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학교를 그만두었다. 1908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종문서를 불태우고 종들을 모두 해방시켰다. 이 무렵 기독교에 귀의, 평양의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14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남경(南京) 금릉(金陵)대학에서 공부하고 17년 상해로 가서 을 조직, 을 파리 강화회의에 대표로 파견했다. 20년 고려공산당에 가입하고, 다음 해 모스크바에서 열린 에 참석했다. 29년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복역, 출옥 후 33년 봄 조선중앙일보>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 신문은 36년 7월 5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린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폐간되었다.

44년 비밀결사인 (建國同盟)을 조직, 독립을 준비해 가던 중, 45년 8월 15일 정무총감 엔토(遠藤隆作)의 제안을 받아들여 일본항복 후 조선의 치안과 질서유지를 통괄하게 되었다. 이에 등과 함께 를 조직하고, 이전인 9월 6일 의 수립을 선포했으나 미 군정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해 12월 인민당(人民黨)을 창당하고, 46년 29개 단체를 규합, (약칭 민전(民戰))을 결성했으며, 을 조직, 좌우 중간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노력하던중 47년 7월 19일 우익청년 한지근(韓智根)에 의해 암살당했다.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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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군정과 친일파의 득세
여운형 지금 읽는 중
2. 남한단독정부 수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