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료국

흥료국

[ 興遼國 ]

시대명 고대/남북국

의 지배하에 있던 발해유민들이 요양(遼陽)에 세웠던 나라.

1029년 8월 초 거란의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 관하의 발해유민들은 대연림(大延琳)의 지휘하에 거란에 반기를 들어 동경성을 중심으로 흥료국을 세우고 연호를 천경(天慶)이라 했다. 대연림은 대조영의 후손으로 거란으로부터 동경사리군상은(東京舍利軍詳穩)의 벼슬을 받고 요양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동경요양부는 원래부터 거란의 영토는 아니었으나 거란의 괴뢰국가 동란국이 서울을 이곳으로 옮길 때 발해의 명문거족도 이리로 옮겨졌다. 또한 이 부근은 철 생산지로서 발해유민의 기술을 이용하고 세력을 분산시키는 정책으로 철의 기술자로 알려진 발해유민을 요양과 안시성 등에 옮겨 발해유민의 집단거주지가 형성되었다. 대연림의 반란은 애초에는 무리한 세금징수와 가혹한 부역노동에 항거하여 일어났는데, 발해유민들의 지지를 받아 독립국가 건설에까지 진전되었던 것이다.

흥료국은 거란의 총공격을 받아 고려에 원병을 청했으나 고려의 신중론으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만 1년 동안 치열한 항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외부와 완전히 절연된 상태에서 힘에 지치고 물자보장도 어렵게 되어 차츰 격파되던 중, 1030년 8월 요양성 안에서 거란군과 내통한 장군 양상세(楊詳世)가 성문을 열고 적을 끌어들임으로써 요양성은 함락되고, 국왕 대연림이 체포되어 발해유민들의 항쟁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