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왕

고왕

[ 高王 ]

시대 남북국
출생 - 사망 미상 ~ 719년
본명 대조영(大祚榮)
직업
재위기간 699년 추정 ~ 719년

발해의 시조. 재위 699?~719. 이름은 대조영(大祚榮)이며, 아버지는 걸걸중상(乞乞仲象)으로 옛 의 장군이었다고 한다.

696년 족의 추장 이진충(李盡忠)이 영주(營州, 지금의 조양(朝陽))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을 기회로 삼아 대조영은 말갈족의 지도자 걸사비우(乞四比羽)와 더불어 무리를 이끌고 영주에서 동북으로 빠져나와 당에 반기를 들었다. 이에 측천무후는 회유책을 썼으나 이를 거부당하자, 이해고(李楷固)를 지휘관으로 하는 당군으로 하여금 대조영과 걸사비우를 추격하게 했다. 당군은 걸사비우를 참살하고 천문령(天門嶺, 휘발하(輝發河)와 혼하(渾河) 사이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장령자(長嶺子) 부근)을 넘어 대조영을 추격하였으나, 대조영은 통솔자를 잃은 말갈병까지 흡수하여 당나라 추격군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천문령 전투). 천문령 전투에서 결정적 승리를 달성한 대조영은 동쪽으로 진군하여 (東牟山)에 자리를 잡고 성력 연간(聖歷年間, 698~700)에는 자립하여 진국왕(震國王)을 칭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 북방의 돌궐이 당을 공격하며 위협하자 대조영은 북방의 돌궐과 접근하여 당의 침략을 견제하고자 했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대조영의 자립이 기정사실화되자 당은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던 종래의 정책을 완화하여 회유정책으로 바꾸었다. 705년에 당에서 사신을 보내 양국 간의 화해가 성립되었으며, 713년에는 대조영을 「발해군왕겸 홀한주 도독(渤海君王兼忽汗州都督)」으로 봉하여 이때부터 진국을 발해국으로 칭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