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호조에서 병선으로 조운하는 일에 대해 건의하다

[조선 중종]호조에서 병선으로 조운하는 일에 대해 건의하다

분류 교통/통신/지리 > 해양문화사전 > 해양사 > 조운

호조가 아뢰기를, ˝전라도의 조선(漕船)에 관한 일입니다. 전에는 공안(貢案)에 붙인 한 해 동안의 항공(恒貢) 이외의 군자(軍資)에 보충하는 쌀과 콩을 반을 군자감(軍資監)에, 반은 주창(州倉)에 받아들여 두었으나, 그 뒤에 해마다 잇달아 흉년이 들어 경창(京倉)에 저축된 곡식이 적어지매, 의논하여 하삼도(下三道)의 주창에 받아들여 둔 곡식도 모두 조전(漕轉)하게 하였으므로 곡식의 수량은 예전보다 더욱 많아지고 조선의 수는 예전과 같았는데, 또 경오년 에 병선(兵船)을 폐지하여 경쾌선(輕快船)을 만들었으므로 배의 수가 더욱 많지 않게 되었고, 정해년 에 이르러서는 또 양계(兩界)로 옮기는 일이 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사선(私船)을 뽑아서 썼었습니다. 사중(司中)에서도 사선을 쓰는 것이 폐단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한 해에 경상(經常)으로 쓰는 것을 헤아리면 곡식의 수량이 매우 많으므로 전라좌도(全羅左道)와 전라우도의 병선에 아울러 싣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모자라기 때문에 사선에 실은 것입니다. 사중에서도 매양 아뢰려 하였으나 아직 아뢰지 못하였습니다마는, 폐지했던 병선을 《대전(大典)》에 의하여 원수(元數)대로 만들고 전세(田稅)도 공안(貢案)대로 하여 주창에 저장하는 곡식을 조운(漕運)하지 말게 하면 사선의 폐단이 없어질 수 있겠는데, 병선의 일은 병조(兵曹)가 조처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였다. ˝폐지하였던 병선을 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전에 전함사 제조(典艦司提調) 심정(沈貞)이 아뢰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루아침에 갑자기 만들 수 있겠는가? 조운이 이미 다가왔고 이제 한꺼번에 만들 수 없으니, 그 폐단이 있더라도 부득이 사선으로 조운해야 한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중종 24년 4월 6일(신미)조.

그래픽

동해안 해운로

동해안 해운로 동해안 해운로는 우리나라 동해 최북단인 함경북도 나진시에서 부터 시작하여 각각의 주여 거점을 거쳐 부산 광역시 부산포에까지 이른다.

남해안 해운로 통합

남해안 해운로 통합 남해안 해운로는 부산광역시 부산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러 주요 거점을 거쳐 전라남도 해남 우수영에 이른다

서해안 해운로

서해안 해운로 서해안 해운로는 전라남도 해남 우숭에서 시작하여 서해안 주요 거점을 거쳐 강화, 인천사이를 통과하고 이를 거쳐 평안북도 신의주에까지 이른다.

연관목차

1288/2347
분쟁
해양기술
등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