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 12년, 정축년(丁丑年), 1517년

조선 중종 12년, 정축년(丁丑年), 1517년

2월 26일

• 농상교서(農桑敎書)를 지어 팔도에 유시(諭示)하도록 함.

3월 7일

• 이자화(李自華)를 한성부좌윤으로 삼음.

3월 8일

• 왕비 책봉(冊封)을 위해 가례도감(嘉禮都監)을 설치함.

3월 13일

• 임금이 모화관(慕華館)에서 진법(陣法) 연습을 친열(親閱)함.

3월 15일

• 윤지임(尹之任)의 딸을 중궁(中宮)으로 결정함.

3월 19일

• 왕후를 친영(親迎)하는 예를 항구한 법으로 정하여 《오례의주(五禮儀註)》에 첨가해서 싣도록 함.

4월 3일

• 반정(反正) 이후 재이(災異)가 생긴 일들을 빠짐없이 서계(書啓)하도록 함.

• 천재와 흉년으로 사대부들이 잔치하며 술 마시는 것을 엄금함.

5월 9일

• 대비가 문정전(文政殿)으로 옮김.

5월 13일

• 대비가 병으로 제안대군(齊安大君)의 집으로 옮기니, 임금이 문안함.

5월 15일

• 윤희평(尹熙平)을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5월 28일

• 축성도체찰사(築城都體察使)와 축성사(築城司)를 없애고, 순찰사(巡察使) 2명으로 그 일을 주관하게 함.

5월 30일

• 한성부판윤을 지낸 유순(柳洵)이 죽음.

6월 1일

• 일식(日蝕)으로 임금이 소복(素服)과 오대(烏帶)를 갖추고 인정전(仁政殿) 섬돌에서 친구(親救)함.

6월 15일

• 이자화(李自華)를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6월 27일

• 《소학(小學)》 등을 한글로 번역하여 인반(印頒)하게 함.

• 축성사(築城司)를 고쳐 비변사(備邊司)라 함.

7월 7일

• 임금이 한성부(漢城府) 가관(假官) 2명을 줄이는 단자(單子)를 정원에 내림.

7월 8일

• 산천에서 기우제를 지냄.

7월 12일

• 대비가 제안대군(齊安大君)의 집에서 창덕궁 동궁(東宮)으로 돌아옴.

7월 13일

• 독서당(讀書堂)에서의 사가독서(賜暇讀書) 기간을 6개월에서 3개월로 줄임.

7월 16일

• 임금이 종묘에 친제함.

7월 19일

• 임금이 면복(冕服)을 갖추고 태평관(太平館)에서 왕비를 친영함.

7월 20일

• 왕비가 선정전(宣政殿)에 나가 내외 명부의 하례를 받음.

7월 27일

• 각도 감사(監司)로 하여금 남전(藍田) 여씨(呂氏)의 향약(鄕約)을 널리 반포하게 함.

7월 29일

• 한세환(韓世桓)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8월 9일

• 임금이 인정전(仁政殿)에서 일본국 사신 태음화상(太蔭和尙)을 접견함.

8월 13일

• 각 관아의 신(神)을 제사하는 부근(付根)을 불사르고 그 제사를 금지함.

8월 15일

• 친영례(親迎禮)를 행한 중궁(中宮)과 임금이 대조전(大造殿)에서 대비(大妃)에게 풍정(豊呈)을 올림.

8월 16일

• 내외명부(內外命婦)의 회연(會宴)이 있음.

8월 20일

• 임금이 경복궁(景福宮)으로 이어하기 위해 미리 수리하게 함.

• 신잠실(新蠶室)을 혁파(革罷)함.

8월 22일

• 최숙생(崔淑生)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8월 24일

• 경세창(慶世昌)을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8월 27일

• 한성부판윤을 지낸 성몽정(成夢井)이 죽음. 시호 양경(襄景).

8월 28일

• 홍숙(洪淑)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9월 4일

• 정광필(鄭光弼) 등으로 하여금 선릉(宣陵)에 별제(別祭)하게 함.

9월 5일

• 홍숙(洪淑)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9월 6일

• 임금이 선정전(宣政殿)에서 전경문신(專經文臣)을 강(講)함.

9월 11일

• 임금이 경복궁(景福宮)으로 이어(移御)함.

9월 14일

• 한성 안에 사는 무격(巫覡)을 금단(禁斷)하도록 함.

9월 17일

• 문충공(文忠公) 정몽주(鄭夢周)를 문묘의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의 다음 자리에 종사(從祀)함.

9월 18일

• 동 · 서 활인서(活人署) 무녀(巫女)의 세(稅)를 혁파하고, 무녀를 활인서에 소속시키지 않도록 함.

• 도류(道流)는 예전대로 관상감(觀象監)에 붙이도록 함.

9월 21일

• 임금이 문묘(文廟)에 친제(親祭)하고 명륜당(明倫堂)에 나가 전(田) 100결(結)을 주어 양현(養賢)의 기초로 삼게 함.

10월 5일

• 임금이 태묘(太廟)에 친제(親祭)함.

10월 12일

• 야대(夜對)에 입시(入侍)하는 재상이 자는 곳을 충훈부(忠勳府)의 직방(直房)으로 함.

10월 25일

• 임금이 인정전(仁政殿)에서 유생(儒生)을 시험하고, 모화관(慕華館)에 거둥하여 무사(武士) 37명을 시취(試取)함.

10월 28일

• 문과 18명을 뽑음.

11월 1일

• 임금이 문소전(文昭殿) · 연은전(延恩殿)에 친제(親祭)함.

11월 3일

• 문 · 무과를 방방(放榜)함.

11월 6일

• 김석철(金錫哲)을 한성부좌윤으로 삼음.

11월 11일

• 한성의 날씨가 봄처럼 따뜻함.

12월 25일

• 한성부로 하여금 오부(五部)를 순심(巡審)하여 얼어 죽은 자가 있는 지 살펴서 아뢰게 함.

12월 26일

• 오부 내에 굶주린 백성이 있는 지 찾아내어 아뢰게 함.

12월 27일

• 추위에 떨고 굶주린 사람은 《대전》에 의해 1명당 유의(襦衣) 한 벌과 매일 쌀 1승(升)씩 주는 것을 항식(恒式)으로 함.

12월 28일

• 밀양에서 자식이 아비를 죽인 변과 관련하여 《소학》을 속히 인쇄 반포하게 하며, 《여계(女戒)》와 《여칙(女則)》 등도 우선적으로 찬집(撰集)하게 함.

윤12월 1일

• 관아에서 우마(牛馬) 도살하는 자를 체포하여 그 죄를 다스리도록 함.

윤12월 18일

• 성균관(成均館)에 하사한 학전(學田) 100결의 경작을 위해 복천사(福泉寺)의 노비를 추쇄(推刷)하여 사급(賜給)하도록 함.

윤12월 23일

• 가사(歌辭)가 음사(淫詞)와 석교(釋敎)로 된 악장(樂章)을 고쳐 짓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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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辛酉年), 15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