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종 17년, 임술년(壬戌年), 1562년

조선 명종 17년, 임술년(壬戌年), 1562년

1월 8일

• 큰 도적 임꺽정 등이 모두 잡히니 토포사 남치근(南致勤)⋅군관 곽순수(郭順壽) · 홍언성(洪彦誠) 및 사복 윤임(允霖)에게 한 자급씩을 더해주고 종사관 한홍제(韓弘濟) · 박호원(朴好元)에게는 각각 말을 내림.

1월 12일

• 중종 능의 천릉에 따라 중종의 정릉(靖陵) 이름은 그대로 두고, 장경왕후의 능은 희릉(禧陵)으로 하게 함.

1월 17일

• 도적의 괴수(임꺽정)가 이미 처단되었으니, 잔당들을 진정시켜 안정된 생활을 하도록 함.

2월 15일

• 임열(任說)을 한성부좌윤으로 삼음.

3월 10일

• 임금이 경복궁 후원의 은행정(銀杏亭)에서 곡연을 베풀었는데 200명이 참석함.

3월 18일

• 임금이 근정전에서 별시문과를 실시하고, 모화관에 나아가 무과를 시험함.

3월 19일

• 임금이 충순당(忠順堂)에서 무사들을 강(講)으로 시험하여 17명을 뽑음.

5월 2일

• 임금이 경회루에서 문신과 무신의 활쏘는 것을 관람하고, 홍문록(弘文錄) 및 피초문신(被抄文臣)을 대상으로 제술시험을 보임.

5월 11일

• 임금이 사정전에서 유생에게 강경하게 하고, 문신들의 제술시험도 치름.

5월 16일

• 관학(館學) 유생들을 정시(庭試)함.

6월 28일

• 조언수(趙彦秀)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8월 12일

• 박충원(朴忠元)을 한성부좌윤으로 삼음.

8월 22일

• 중종의 능을 옮기기 위해 발인하여 새 능을 향해 도성을 지날 때에 임금은 궁중에서 서쪽을 향하여, 도성에 있는 백관들은 광화문 밖에서 서쪽을 향하여 부복하고 지송함.

9월 4일

• 천릉도감이 중종의 정릉(靖陵)을 천장(遷葬)하고 안릉제(安陵祭)를 지냄.

9월 13일

• 대왕대비 · 공의왕대비 · 중전이 선릉과 정릉에 친제(親祭)를 위해 거둥할 때 천둥과 번개가 치니 원옥(冤獄)을 심리할 것을 의금부와 형조에 이르고 팔도 및 개성부에 하유하도록 함.

9월 29일

• 선종 판사(禪宗判事) 보우(普雨)를 병으로 체임시킴.

10월 20일

• 김주(金澍)를 한성부좌윤으로 삼음.

12월 19일

• 선종 판사 보우의 직첩을 환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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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辛丑年), 16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