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종 원년, 병오년(丙午年), 1546년

조선 명종 원년, 병오년(丙午年), 1546년

1월 6일

• 정토사(淨土寺)에서 독서한 유생들을 정거(停擧)하도록 함.

• 선왕 능침의 사찰인 봉선사 · 봉은사에 유생들의 출입을 금함.

1월 16일

• 한성부가 남부에 버려 둔 시신에 관한 일을 각부로 하여금 끝까지 추궁하게 함.

1월 19일

• 을사사화로 죽은 윤임(尹任) · 유관(柳灌) · 유인숙(柳仁淑) · 이유(李瑠)의 노비 문안을 승정원에 내리면서 공신의 희망에 따라 나누어 주도록 함.

1월 21일

• 명나라 사신 유원(劉遠) · 왕학(王鶴)을 모화관에서 맞이함.

2월 2일

• 명나라 사신이 돌아가니 모화관에서 전송함.

2월 6일

• 명나라 사신 섭보(聶寶)와 곽난(郭鑾)이 봉왕고명사(封王誥命使)로 오니 모화관에서 맞이함.

2월 9일

• 상진(尙震) · 이준경(李浚慶) · 윤원로(尹元老) 등 원종공신 1등에게 한 자급씩 올림.

2월 25일

• 명나라 사신이 돌아가니 모화관에서 전송함.

2월 28일

• 문정왕후가 위사공신(衛社功臣)을 동빈청(東賓廳)에서 연회하고 충성하도록 함.

2월 29일

• 백성들 중에서 가난해서 시집가지 못하거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경우를 선처하게 함.

3월 1일

• 윤원로(尹元老)가 동생 윤원형(尹元衡)과의 권력 다툼에서 패배하여 파직됨.

3월 7일

• 임금이 처음으로 경사전(景思殿, 중종 혼전)과 영모전(永慕殿, 인종 혼전)에 별제(別祭)를 지냄.

4월 3일

• 흉년을 대비하여 저축한 군자창의 오래 묵은 쌀로 빈민을 진휼하게 함.

• 오부로 하여금 가난한 백성들을 뽑아 공채(公債)를 나누어주고, 가을에 환수하도록 함.

4월 8일

• 윤개(尹漑)와 홍섬(洪暹)이 종묘 3칸을 증축하는 일 등 묘제(廟制)에 대해서 아룀.

• 이찬(李澯)을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4월 17일

• 한성과 경기 일원, 충청도 직산 · 음성에 우박이 내림.

4월 22일

• 경기 가평 · 영평 등 고을에서 전염병으로 382명이 죽으니 경의(京醫)를 보내 구료하게 함.

4월 23일

• 독서당(讀書堂) 운영을 충실하게 함.

• 장경왕후(章敬王后)의 시호에 선소의숙(宣昭懿淑)을 더함.

• 중종 배향공신으로 박원종 · 유순정 · 성희안 · 정광필 등을 입계함.

4월 24일

• 임금이 사정전(思政殿)에서 책제(策題)를 내도록 하고, 경회루 아래에서 무과(武科) 28명을 뽑음.

4월 25일

• 문과 별시 33명을 뽑음.

4월 27일

• 수차(水車)가 만들어져 반송지(盤松池)에서 시험함.

5월 6일

• 한성과 경기 · 황해도 고을에 새알만한 우박이 내림 .

5월 15일

• 문정왕후가 정릉(靖陵)과 효릉(孝陵)의 수릉관(守陵官) · 시릉관(侍陵官)에게 술을 내림.

5월 23일

• 공신도감에서 시인(市人)들에게 위사공신을 그리는데 드는 단천과 울산의 안료를 바치라고 독촉함.

• 한성에 지진이 발생함.

5월 27일

• 21일부터 계속 큰 비가 내림.

5월 29일

• 동강과 서강의 표류 인가 수가 140여 채에 이름. 가옥 수를 계산하여 구제하도록 함.

6월 3일

• 한성과 함경도에 지진이 발생함.

6월 7일

• 혼인과 각사 음식의 사치스러움을 금하게 함.

6월 18일

• 항간에 여역이 크게 번져 각부의 관리로 하여금 한성부에 보고하여 검찰하도록 함.

6월 20일

• 성균관인(成均館人)이 성안에 들어온 도적을 잡기 위해 잠복한 군인을 구타 · 결박하니 의금부에 하옥하고 치죄하도록 함.

6월 21일

• 중종의 신주를 모시기 위하여 종묘를 증축하면서 종묘의 신주를 인정전으로 옮길 때 종묘의 북쪽 담을 헐고 새 문을 만들어 통행하게 함.

7월 5일

• 경기 광주 등에서 조속(早粟)에 병충해를 입음.

7월 8일

• 종묘 중건을 위하여 신주를 인정전으로 옮김.

7월 18일

• 땅이 꺼지는 변괴가 있고, 홍문관 앞 연못의 물이 붉게 변하였으며, 경회루 연못의 물도 적색으로 변함.

7월 21일

• 한성에 거주하는 중 100명을 징발하여 선릉을 참배할 교량을 놓도록 했으나, 흉년으로 징발하지 말고 우선 영선군(營繕軍)으로 하도록 함.

7월 27일

• 호조와 내관에게 인수궁(仁壽宮)의 수리에 소요되는 목재와 기와를 조사하도록 함.

7월 28일

• 정업원을 수리하여 선왕의 후궁들을 사제(私第)에서 옮겨 거처하게 함.

8월 6일

• 역모죄로 연루된 이임(李霖) 등이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되는 옥사(獄事)가 일어남.

8월 23일

• 수구문(水口門) 안의 동지(東池)를 수리하도록 함.

8월 26일

• 대왕대비와 왕대비가 정릉(靖陵)에서 참배하고, 효릉(孝陵)을 봉심함.

8월 27일

• 한성에 천둥과 번개가 치고 큰비가 내림.

9월 3일

• 찬성 · 참찬 · 판서 · 참판 · 참의 · 도승지 등 대폭적인 관직 교체가 이루어짐.

9월 23일

•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리고 큰 우박이 쏟아짐.

9월 25일

• 왜노의 접전도 매번 평안보(平安報)의 불을 들었으므로, 한성에서 방답(防踏)에 이르는 일로(一路) 봉수인을 차례로 추고하도록 함.

9월 29일

• 종묘 증건(增建)으로 창덕궁 인정전에 임시로 옮겼던 종묘의 신위를 환안(還安)함.

10월 1일

• 공조 · 한성부 · 관상감으로 하여금 산맥의 굴취 여부를 살펴본 뒤에 인가를 철거하되, 비록 오래된 집이라도 표 내에 있다면 철거하고 새로 쌓은 담장도 다 헐어버리도록 함.

10월 4일

• 종묘를 개수할 때 이안(移安) · 환안(還安)한 모든 집사에게 상을 내림.

10월 9일

• 최연(崔演)을 한성부좌윤으로 삼음.

10월 17일

• 근정전에서 문과중시 10명, 무과중시 35명, 식년문과 33명, 식년무과 28명을 방방(放榜)함.

10월 23일

• 남쪽에서 북쪽까지 지진이 발생함.

11월 2일

• 윤원형(尹元衡)을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11월 14일

• 15일이 중종의 대상(大祥)이므로 임금이 창덕궁 숭문당에서 재숙함.

11월 15일

• 임금이 경사전(景思殿)에서 연제(練祭)를 지냄.

• 대왕대비가 친히 중종의 제문을 짓고 내관을 보내 정릉에 별도로 제사를 지냄.

12월 2일

• 황금을 장사꾼이 미리 사서 바치게 하여 사용할 때 임박해서 독촉하는 폐단이 없게 하고, 중국에서 무역하지 말도록 함.

12월 25일

• 동 · 서빙고의 얼음을 뜨는 역사를 중지하고 추워지기를 기다림.

12월 27일

• 왕대비가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김.

12월 29일

• 이미(李薇)를 한성부우윤으로 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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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辛酉年), 15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