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소리

서도소리

요약 ① 황해도 지방에서 불리던 노래의 총칭.
② 1978년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인 오복녀(吳福女)가 지은 서도소리의 교재.
③ 중요무형문화재.

① 황해도 지방에서 불리던 노래의 총칭.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로 지정된 서도소리는 "관산융마"(關山戎馬)·"수심가"(愁心歌)·"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 비교적 보편성을 지닌 "수심가"는 서도소리 전체의 척도가 된다.

정조(1776~1800) 이후 평양기생의 특징이었던 노래인 "관산융마"는 서도 본바닥의 창곡가(唱曲家)가 아니면 그 진수를 꿰뚫지 못한다. 또한 서도조(西道調)의 특유한 명랑조로 된 "추풍감별곡"은 처아(淒雅)를 겸한 목이 아니면 부르기 어려운 소리이다. 정조 때 문인 신광수(申光洙)의 공령시(功令詩)를 율조(律調)에 올려 부르는 "관산융마"는 서도의 시창(詩唱)으로 볼 수 있다. 서도소리조로 길게 내뻗는 "관산융마"는 대쪽을 울리는 듯 청초하고 투명하다.

신광수(申光洙)의 과시(科詩)인 "관산융마"의 원 시제(詩題)는 등악양루(登岳陽樓) 탄관산융마(歎關山戎馬)이며, 시의 내용은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그의 만년에 표랑(漂浪)하다가 악주(岳州)에 있는 악양루(岳陽樓)에 오른 일을 읊은 것이다. 이 "관산융마"를 최초로 노래 부른 사람은 평양기생 모란(牡丹)이라고 하며, 그녀가 부른 "관산융마"의 성조(聲調)는 처아했다. 이것이 많은 기생들의 방창(倣唱)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

민요잡가처럼 누가 처음 부르기 시작했는지를 알 수 없는 "수심가"는 대부분이 인생의 허무함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병자호란(1636년) 무렵 성천(成川)의 명기 부용(芙蓉)이 "수심가"를 지었다고 하지만 믿기 어렵다. "수심가"는 처음부터 길게 내뻗는 "수심가"와 짝을 이루는 "엮음수심가"로 구분된다.

가곡(歌曲)이나 시조(時調)에 나오는 엮음이란 말은 사설(辭說)·편(編)·십(拾)·주심과 같은 용어와 같은 뜻이다. 즉 가곡의 편수대엽(編數大葉)·언편(言編), 시조의 사설시조·편시조(編時調)·십시조(拾時調)·주심시조·사설지름시조, 잡가의 "사설공명가"(辭說孔明歌)·"사설난봉가"(辭說難逢歌), 그리고 민요의 "엮음아리랑"("정선(旌善)아리랑") 등은 모두 "엮음수심가"와 그 리듬에 있어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엮음·사설(辭說)·편의 이름이 붙은 곡은 일반적으로 가사가 긴 편이고, 그 소리에 있어 곶감꼬치 꾀듯이 리듬이 촘촘하다.

전라도의 대표적인 속요(俗謠)가 "육자배기"이고, 서울의 것은 시조(時調)와 "유산가"(遊山歌)의 영향을 받았듯이, 수심가조(愁心歌調)의 영향을 받은 서도소리는 "초한가"(楚漢歌)·"공명가"(孔明歌)·"사설공명가"·"제전"(祭奠)·"파경"(罷經) 등이다. 이런 서도소리는 반드시 느린 박자의 수심가조로 종지(終止)하는 점이 특징이다.

"추풍감별곡"은 전편(全篇)이 1시간 정도 걸리나, 그 절반인 여섯 째 마루까지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이 곡의 음계는 솔·도·레 즉 3음음계의 계면성(界面聲)에 들며, 여기에 창자의 즉흥적인 감흥에 따른 장식음이 부가된다. "추풍감별곡"은 서도의 여류 창곡가(唱曲家) 사이에 널리 불렸지만, 현재 본바닥 격조를 지닌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희귀하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서도소리는 이미 경기명창(京畿名唱)들이 능히 부르기 때문에 서울의 유명한 명창들은 모두 서도소리에도 일가를 이루고 있었다. 광무대(光武臺)·연흥사(演興社)·장안사(長安社) 시절 문영수(文泳洙)와 이정화(李正華)의 인기가 높았고, 두 명창은 축음기에 많이 취입하였다. 평양 본바닥에서는 김종조(金宗朝)·최순경(崔順慶)·김칠성(金七星)·양세진(梁世振)·곽풍(郭風)·이인수(李仁洙)와 같은 김관준(金寬俊)의 제자들이 자라서 서도소리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또한 평양의 유명한 기생학교인 기성권번(箕城券番)에서는 김밀화주(金密花珠)가 많은 여류명창을 길러냈다.

② 1978년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인 오복녀(吳福女)가 지은 서도소리의 교재.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 이 교재의 첫째 부분은 음악적인 면을 정리한 것이고, 둘째 부분은 노래 가사를 정리한 것이다. 특히 첫째 부분에서 저자가 터득한 음악적 지식과 체험을 글로 정리하였다.

Ⅰ. 목 쓰는 요령; Ⅱ. 목 쓰는 기호; Ⅲ. 목 쓰는 기법; Ⅳ. 장고 부호; Ⅴ. 채보: "관산융마"(關山戎馬)·"수심가"(愁心歌)·"초목이"·"영변가"(寧邊歌)·"긴아리"·"잦은아리"·"산염불"(山念佛)·"잦은염불"·"긴난봉가"·"잦은난봉가"·"안주애원성"(安州哀怨聲)·"몽금포타령"(夢金浦打鈴)·"오봉산타령"(五峯山打令)·"방아타령"·"양산도"(楊山道)·"개성난봉가"(開城難逢歌); Ⅵ. 가사 모음: 제1편 시창부: "관산융마"; 제2편 서도좌창부: "공명가"(孔明歌)·"배따라기"·"잦은배따라기"·"초한가"(楚漢歌)·"향산록"(香山錄)·"관동팔경"(關東八景)·"장한몽"(長恨夢)·"초로인생"(草露人生)·"봉황곡"(鳳凰曲)·"제전"(祭奠)·"전장가"(戰場歌)·"영변가"(寧邊歌)·"날찾네"; 제3편 서도입창부: "초목이"·"놀량"·"앞산타령"·"뒷산타령"·"경발림"; 제4편 서도민요부: "수심가"(愁心歌)·"엮음수심가"·"반엮음"·"긴아리"·"잦은아리"·"산염불"(山念佛)·"잦은산염불"·"개성아리"·"안주애원성"·"몽금포타령"·"오봉산타령"·"함경도애원성"(咸鏡道哀怨聲)·"신고산타령"(新高山打鈴)·"씨름타령"·"금다래타령"·"배치기"·"연평도(延坪島)난봉가"·"느리개타령"; 제5편 서도잡가: "긴난봉가"·"잦은난봉가"·"병신난봉가"·"사설난봉가"·"개타령"·"방아타령"·"양산도"(陽山道)·"개성난봉가"·"갖은방아타령"; 제6편 서도민속놀이: "호미가"·"호미타령"·"잦은호미타령"·"방아찧기"·"제석방아"·"관함세기"·"투전풀이"; Ⅶ. 부록: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적벽부"(赤壁賦)·"국문뒤푸리."

③ 중요무형문화재. 1969년 처음으로 장학선(張鶴仙)이 서도잡가와 민요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됐지만, 작고 후 1971년 추가 예능보유자로 김정연(金正淵)과 오복녀(吳福女)가 지정됐다. 전수자는 김복례·김광숙·김진수·지정희.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3.1194~95쪽
  • 『民俗藝術事典』, 서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9년, 158쪽
  • 『文藝總鑑』, 서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6년, 287~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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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소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