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타운의 역사

조지타운의 역사

조지타운은 1745년 조지타운을 포함한 데메라라-에세퀴보(Demerara-Essequibo) 강 유역을 식민 통치하던 네덜란드가 데메라라 강 하구의 범람원에 플랜테이션 농장을 조성하면서 처음으로 개발되었다. 네덜란드 인들은 해발 고도가 매우 낮은 이 지역에 본토의 간척 및 치수 기술을 적용하여 대규모의 플랜테이션 농장을 조성하였다. 하지만 당시 네덜란드의 식민지 수도는 데메라라 강의 보셀른(Borselen) 섬에 있었고, 조지타운에는 취락이 발달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조지타운에 주거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781년 영국이 네덜란드로부터 이 지역을 빼앗을 당시 영국군 장교인 킹스턴(Bober Kingston)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장소로 현재의 위치를 선정하면서부터이며, 1782년 프랑스가 이 지역을 손에 넣으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프랑스는 조지타운을 새로운 마을이라는 뜻의 ‘라누벨빌(La Nouvelle Ville)’이라고 명명하고 식민지 수도로 지정하였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784년 네덜란드가 다시 프랑스로부터 이 지역의 점유권을 빼앗고 도시의 이름을 스타부르크(Stabroek)로 변경했지만, 데메라라-에세퀴보 강 유역의 통합 식민지 수도라는 지위는 계속 유지시켰다. 이후 도시가 남북으로 빠르게 확장되면서 많은 지역이 도시 구역으로 편입되었다.

1803년에 이 지역은 다시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1812년 영국의 조지 3세(George Ⅲ)를 기리기 위해 페니텐세(Penitence)에서 대서양 연안의 킹스턴에 이르는 도시의 일부를 조지타운으로 명명하면서, 현재의 이름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인 1842년에 도시의 지위를 얻은 이후에 식민 수도로서 중앙 정부 기관을 비롯하여 행정, 금융, 보험, 무역 기능 등 대부분의 국가 기능이 집중하게 되었고, 가이아나 제1의 도시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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