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형랑과 길달

비형랑과 길달

분류 문학 > 초월적 인물형 > 귀신(鬼神)형

• 갈래 : 민담
• 시대 : 시대미상
• 신분 : 일반
• 지역 : 기타
• 출처 : 편집부 ()
• 내용 :
신라 제 25대 진지대왕은 576년에 즉위하였다. 그러나 진지왕은 국사를 돌보지 않고, 날이면 날마다 주색에 빠져 있었다. 그런 진지왕에겐 여자와 관계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는데, 사량부에 도화랑(桃花娘, 복사꽃 처녀)이라는 아리따운 여인이 살고 있었다. 이 여인의 자태는 너무도 곱고 아름다워 그 소문이 왕에게까지 이르렀다. 왕은 이 소문을 듣고 도화랑을 궁으로 불러들여 관계를 맺으려했다. 이에 도화랑은 완강히 거부하며 “여자의 도리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설령 왕의 위엄으로도 여자의 지조를 빼앗지는 못할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왕이 말했다. “너를 죽이면 어찌하겠느냐.” 도화녀가 대답하기를, “차라리 제가 죽어서 딴 마음을 거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왕이 물었다.“ 네 남편이 없으면 되겠는가.” “네, 남편이 없으면 됩니다.” 왕은 도화랑을 놓아주었고, 그 후 진지왕은 임금 자리에서 ?겨 난 후 죽고 말았다. 그리고 2년 만에 도화랑의 남편 역시 죽었다. 열흘이 지난 어느 날 밤 진지왕이 생시와 같은 모습으로 도화랑의 방에 와서 말했다. “지난 번 약속처럼 네 남편이 죽었으니 이제 내 뜻을 받아 줄 수 있겠는가” 도화녀는 부모님께 의논을 했고, 부모는 임금의 명령을 어찌 피하겠냐면서 딸을 방으로 들여보냈다. 임금은 이레 동안 그곳에 머물렀는데, 내내 오색구름이 지붕을 감쌌고, 방안엔 향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이레 후 왕은 종적을 감췄다.

그 후 도화랑은 임신을 했고, 해산을 할 때가 되자 천지가 진동하였다. 드디어 한 사내아이를 낳으니 이름을 비형이라 하였다. 이때 나라를 다스리던 진평왕이 이 소문을 듣고 비형을 궁궐로 데리고 왔는데 재주가 비상해서 열다섯살이 되었을 때 집사벼슬을 주었다. 그런데 매일 밤 궁궐을 빠져나와 놀다 새벽에 들어오자 왕은 날쌘 병사를 시켜 미행케 했다. 병사들이 숨어서 보니 비형이 서쪽 황천(경주 서쪽) 언덕에서 귀신들과 놀다가 새벽이 되면 궁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왕은 비형랑을 불러 “네가 귀신들과 논다는 것이 사실이냐. 그렇다면 네가 귀신들을 시켜 신원사 북쪽 시내에 다리를 놓거라.” 이에 비형랑은 귀신들에게 돌을 다듬게 하여 하룻밤 사이에 큰 다리를 놓았다. 때문에 그 다리를 귀교(鬼橋)라 불렀다. 왕이 또 물었다. “귀신들 중에 인간 세상에 나와 정치를 도울만한 자가 있느냐.” 그러자 비형이 길달이란 자를 데려오자 왕은 길달에게 집사란 벼슬을 내렸다. 이때 각간 임종에게 자식이 없어서 왕은 길달을 아들로 삼게 했다. 하루는 길달이 여우로 둔갑해 도망치자 비형은 귀신을 시켜 길달을 잡아 죽였다. 그래서 귀신들은 비형의 이름만 듣고도 무서워 도망쳤다. 사람들은 이를 노래로 지어 불렀으니 임금의 혼이 아들을 낳았으니/비형랑의 집이 여기로세/날뛰는 온갖 귀신들아/아예 이곳에는 함부로 머물지 말라/이때부터 민간에서는 이 가사를 집 밖에 써 붙여 귀신을 ?는 풍속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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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