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제신농

염제신농

분류 문학 > 초월적 인물형 > 창세(創世)형

• 갈래 : 신화
• 시대 : 삼국이전
• 신분 : 왕족
• 지역 : 기타
• 출처 : 편집부 ()
• 내용 :
삼서성에 살던 신농이 동쪽 산동성 곡부로 장가들어 지난 날 복희씨가 도읍했던 하남성 진(陣)에 양족(羊族)을 대표하는 나라를 세웠다. 원래 신농 일가가 속해 있던 부족은 염소와 양을 치며 살아가는 부족들이라 하여 양족이라 했다. 황하의 서쪽 지방에 큰 부족을 이루고 살았던 양족은 계절에 따라 목축지를 이동하며 사는 유목민족이었다. 신농은 하남성 진에서 산동성 곡부로 도읍을 옮겼다가 다시 자기가 태어난 열산으로 옮겼다. 그 곳에서 신농은 백성들에게 농사를 가르치고 의약을 만들어서 의농(醫農)의 시조로 불리게 되었고, 또한 농사의 시조라 하여 신농(神農)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신농의 이러한 배경에는 조상인 고시씨로부터 내려온 탁월한 농사지식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크게 일어난 신농의 양족 나라는 마침내 배달국 제 10대를 갈고 환웅천황 때 나라의 경계를 정하게 되었는데, 그 국경은 산동성 태산의 남쪽 진류(陳留)인 공상(空桑)을 경계로 함에 따라 동쪽이 배달국이 되었다.

신농에게 염제(炎帝)라는 칭호가 붙은 것은 그가 남방의 불[火]기운으로 제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불[炎;염]은 오행에서 남쪽을 뜻하며, 붉은 색깔로 표현하기 때문에 사방신 가운데 남쪽에 주작(朱雀)이 있는 것이다. 주작의 ‘주(朱)’자는 붉다는 뜻이므로, 주작의 의미는 붉은 새이다. 새는 ‘해’로도 새김을 했기 때문에 붉은 새, 곧 주작은 ‘붉은 해’를 의미한다. 염제신농이 제왕이 된지 43년째 되던 해에 자신의 뉘조에게 장가를 들었던 황제헌원과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결국 신농은 황제헌원에게 패해 임금의 자리를 내놓게 되었다. 이에 신농 어머니계의 군주 치우가 황제헌원을 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탁록에서 수년간에 걸쳐 전쟁을 벌였다. 그 결과 연전연패한 황제헌원은 결국 임금의 제위에 오르지 못하고, 대신 그 아들 소호김천이 신농에 이어 제위를 이어갔다. 제위를 빼앗긴 신농은 대파산으로 들어가 ‘산사람[山人]’이 되었다. ‘신선(神仙)’이라는 말은 ‘신농이 산 사람[仙]’이 되었다는 말에서 시작된 용어이다. 지금은 신선이라는 말을 신적(神的)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은 산사람이 된 신농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그 뒤 고조선 제47대 고열가 단군이 제위를 버리고 아사달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