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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자료

• 명 칭 : 쌀
• 시 대 : 조선 후기(19세기)
• 설 명 : 벼의 왕겨와 겨층을 벗겨내어 먹을 수 있도록 가공한 것.
쌀은 보리 · 밀과 함께 세계적으로 중요한 농산물이다. 세계 총생산량의 약 92%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생산되며, 또 그 대부분을 아시아 사람들이 먹고 있다. 한국도 쌀의 주요 생산국의 하나이고, 또쌀은 한국인의 주식이다.

벼의 재배 기원에 대해서는 고고학자들이 많이 연구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인도에서는 BC 7,000~5,000년 경에, 중국에서는 BC 5,000년 경에 벼를 재배하였다고 한다. 한국에는 기원전 2,000년 경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탄화된 쌀이나 벼의 탄소 동위원소 연대추정(carbon dating) 및 기타 고고학적 증거로부터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 쌀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잡곡(피 · 기장 · 조 · 보리 · 밀 등)을 주식(主食)으로 하였으나 1.000여 년 전, 즉 통일신라시대부터 벼의 생산량이 많아지면서 쌀이 우리 식생활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결국 쌀이 들어오면서 분식(粉食) 중심에서 쌀밥 중심의 식생활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 한국에서 쌀이 차지한 정치적 ·경제적 ·농업기술적 위치는 너무나 뚜렷하다.

쌀은 5∼6세기경까지만 해도 귀족식품으로 인식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주식 유형을 보면 북부는 조, 남부는 보리, 귀족층은 쌀이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쌀은 물가의 기준이요 봉급의 대상으로 할 정도로 귀중한 존재가 되었다. 쌀의 생산량이 좁쌀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차차 좁쌀보다 많아져 곡류의 대표격이 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온 후부터라고 생각된다. 쌀을 이용하는 방법으로는 옛날부터 낟알로 밥을 지어 일상식품으로 하였고, 분식으로서는 가루를 내어 떡을 만들어 명절이나 제사 때 별식으로 사용하였다.

※ 자료참조 : 시장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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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원형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