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평통보

상평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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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자료

• 명 칭 : 상평통보
• 시 대 : 조선 후기(19세기 말~20세기 초)
• 설 명 : 17세기 70년대 말부터 국가의 유일한 법화(法貨)로서 채택, 유통되기 시작하여 조선 말기까지 사용된 동전(銅錢).
상평통보(당일전)는 동(銅). 석(錫) 및 납으로 주조되었으며, 무게는 2전(錢) 5푼[分]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으나 점점 가벼워져서 마침내 1전 2푼으로 줄어들었다. 사용 초기의 상평통보의 유통가치는 은 1냥(兩)에 4백문(文)이고, 쌀 1되에 4문으로 비정(比定)되었다. 양란 이후 농업, 광업, 수공업 등 사회 제생산력이 증진되는 한편 상품교환경제가 활성화되자 기존의 쌀. 베 등 물품화폐와 칭량은화(秤量銀貨) 대신 명목화폐인 동전 통용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이같은 사회경제 발전을 배경으로 1678년(숙종 4)에 허적(許積)의 건의에 따라 상평통보(당일전)를 국가의 유일한 법화로서 주조 유통하게 되었다.

상평통보는 처음에 상평청(常平廳). 호조(戶曹) 등 중앙관청에서 주조 발행되었으나 그 후에는 각 지방관청 및 각 군영에서도 주조 유통되었다. 그리하여 주조 기관, 주조 시기와 주조기관의 경제적 평편에 따라서 크고 작은 여러 가지 형태의 상평통보(당일전)들이 주조 발행되었다. 상평통보(당일전) 중에는 작은 것에 비해 두배 이상 큰 것이 있기 때문에, 형태가 큰 것은 흔히 '당2전(當二錢)' 또는 '절2전(折二錢)'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1670년대 말부터 상평통보의 유통영역이 점차 전국 각지방으로 확대되고 각계층의 화폐에 대한 가치인식이 심화되었다. 이처럼 상평통보의 유통 보급으로 상품화폐경제가 확대 발전되자 봉건 조선사회의 성리학(性理學) 중심 가치체계와 농업중심 생산양식의 해체 내지 근대지향은 촉진되었다.

※ 자료참조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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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원형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