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

저울

분류 정치/경제/생업 > 디지털리소스실 > 도구 > 도량형 3D
저울 본문 이미지 1

원천자료

저울 본문 이미지 2

고증자료

• 명 칭 : 저울
• 시 대 : 조선 후기(19세기 말~20세기 초)
• 설 명 : 물체의 무게를 다는 데 쓰는 기구.
우리 나라 저울의 역사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 뿐만 아니라 삼국시대의 석제 용범이나, 신라시대의 석제추, 통일신라시대의 12지상 청동추가 출토된 점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중국과의 교역 때문에 중국의 저울을 받아들였다. 또한 충렬왕 2년에는 우리 나라의 저울제도를 원나라에 맞추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태종 10년에 사헌부에서 서울에서는 말과 섬을 검사할 때에 저울도 같이 바르게 하고, 지방에서는 감사가 경시서(京市署)에서 검사한 저울을 가지고 검사하도록 하였다. 세종 3년에는 공조에서 저울을 교정하여 만들고 경시서에 두고 판매하도록 하였다. 또한 《경국대전》<공전 경공장조>에 의하면 공조에 저울을 만드는 공인 2명이 배정되어 있었다. 저울은 양제의 문란과 더불어 그 문란상이 지적되었다. 즉 저울질할 때 저울대를 숙이거나 쳐들게 하여서 냥[兩]이 변하여 근이 되고 형이 변하여 석(石)이 되는 폐단이 있었다. 이에 숙종대에 사헌부에서 시장에서 쓰는 저울에 낙인하여 반포하게 하였다.

저울의 종류는 대저울, 맞저울, 앉은뱅이저울, 용수철저울, 약저울 등이 있다. 그 중 대저울은 또 소칭, 중칭, 대칭으로 분류되는 데 경국대전 에 소칭은 3근 혹은 1근, 중칭은 20근 혹은 7근, 대칭은 100근으로 규정하고 있다. 소칭은 주로 약재나 금·은 등의 무게를 다는데 사용한다. 중칭은 주로 곡물, 야채 등 생활용품을 측정하는데 사용한다. 그리고 대칭은 쌀가마, 보리가마, 돼지 등 주로 무거운 물건을 측정하는데 사용하였다. 대칭은 손으로 들 수 없기 때문에 보통 틀에 걸어서 사용한다.

※ 자료참조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3D

출처: 문화원형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