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후의 학생운동

4·19혁명 후의 학생운동

[ 四一九後-學生運動 ]

시대명 현대

이후 학원민주화·국민계몽·· 등 여러 부문에 걸쳐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벌여나간 운동.

4·19혁명의 주도세력이었던 학생들은 당면목표였던 독재정권 타도에 성공하자 혁명의 뒤처리를 보수정치세력인 과도정부에 맡기고 일단 학내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최초로 전개한 것은 학내민주화운동으로서, 한동안 치열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한편 대외적 운동으로 ·신생활운동을 함께 펼쳐나갔는데, 이는 「혁명정신을 바르게 계승하려면 신생활·신도덕의 확립」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운동은 국민들의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채 끝나고, 한동안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표류하던 학생운동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준 것은 통일운동이었다. 1960년 11월 1일 서울대 민족통일연맹 발기대회를 시발로 5·16 직전까지 활발한 양상을 보이면서 전개되었던 통일운동은 5·16군사쿠데타를 맞아 하루아침에 중단되고 말았다.

이처럼 4·19혁명 이후의 학생운동이 상당 기간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표류하다가 5·16으로 좌절되고 만 것은 애초 운동주체가 의 반외세·반독재 이념을 인식하지 못하고 단순한 정권교체 정도로 좁게 이해한 나머지, 독재정권을 배태시킨 토대를 무너뜨리지 못한데다 대체세력의 형성에도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학생운동의 이론적·조직적 한계성은 5·16 직후인 61년 5월 23일 서울대 학생회가 5·16군사쿠데타 지지선언을 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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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4월혁명과 제2공화국
9. 민중운동의 고양
10.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
1. 5·16과 군사독재의 개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