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생시위대 피습사건

고대생시위대 피습사건

[ 高大生示威隊被襲事件 ]

시대명 현대
연도 1960년

1960년 4월 18일 고려대생 3천여 명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좌데모를 한 후 귀교하다가 정치깡패의 습격을 받아 한 명이 죽고 수십 명이 부상당한 사건.

신입생 환영회 날이었던 이날 오후 12시 50분 전교생은 「청년학도만이 진정한 민주역사 창조의 역군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고 총궐기하자」는 내용의 선언문을 채택하고 교문 밖으로 진출, 국회의사당에까지 이르렀다. 의사당 앞에서
△경찰의 학원출입 금지
△마산사건 책임자 처단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마친 후 귀교길에 올라 질서정연하게 행진하던 중, 선두가 종로 4가 천일극장 부근에 이르렀을 무렵 쇠갈고리·쇠사슬·쇠망치 등으로 무장한 50~60명의 괴한들이 튀어나와 학생들을 무차별 난타했다.

이 사육한 이들 폭력배와의 약 30분에 걸친 난투극 끝에 한상철이라는 학생이 죽고 50여 명의 학생이 부상당했으며, 현장을 취재하던 사진기자 3명이 카메라를 빼앗기고 구타당했다. 이 4·18고대생시위대 피습사건은 이튿날인 4월 19일 학생들이 일제히 궐기하게 만든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고, 학생시위의 주역을 지방의 고교생으로부터 서울의 대학생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시위목적도 부정선거규탄에서 독재타도로 전환시켰다는 데 그 의의가 크다.

연관목차

862/1295
6. 원조경제
7. 이승만 독재체제의 구축
8. 4월혁명과 제2공화국
9. 민중운동의 고양
10.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
1. 5·16과 군사독재의 개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