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

통일운동

[ 統一運動 ]

시대명 현대

1960년 11월 1일 서울대 민족통일연맹 발기대회를 시발로 5·16 직전까지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학생운동.

· 등의 실패경험을 통해 의 이념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학생들은 민족통일이야말로 4월혁명의 궁극적 목표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는 61년 4월 첫 돌을 맞아 서울대생들이 발표한 에 뚜렷이 나타났다. 학생들은 <선언문>에서 「이 땅의 역사를 전진적으로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반봉건·반외압세력·반매판자본 위에 세워지는 민족혁명을 이룩하는 길뿐」이라고 전제하고 「이 민주·민족혁명 수행의 앞길에는 깨어진 조국의 민족통일이라는 커다란 숙제가 놓여 있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의식적 각성과 더불어 조직화운동도 활발히 전개되어 60년 11월 18일 <서울대 민족통일연맹>이 결성된 데 이어, 이듬해 2월 16일에는 성균관대를 비롯한 전국 10여 개 대학에서 <민족통일연구회>가 발족했고, 5월 5일에는 전국 17개 대학대표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결성준비대회>를 열고 남북학생회담 개최를 요구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학생들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정부는 즉각 불허방침을 천명했으나, 이는 통일을 열망하는 세력들을 한데 결집시키는 계기가 되어 5월 13일에는 민자통 주최로 <남북학생회담 환영 및 통일촉진 궐기대회>가 열렸다. 이처럼 4·19 이후의 학생운동의 질을 높이고 각계각층의 지지와 호응을 얻으며 전개되던 학생들의 통일운동은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남에 따라 6개월여 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관련이미지

침묵시위 플래카드에 나타난 통일구호.

침묵시위 플래카드에 나타난 통일구호. 출처: 한국근현대사사전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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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4월혁명과 제2공화국
9. 민중운동의 고양
통일운동 지금 읽는 중
10.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
1. 5·16과 군사독재의 개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