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오입개헌

사사오입개헌

[ 四捨五入改憲 ]

시대명 현대
연도 1954년

의 종신집권을 위해 1954년 11월 29일 불법적으로 헌법개정안을 통과시킨 사건. 우리나라 헌정사상 제2차 개헌.

이보다 앞서 5월에 실시된 에서 대규모 부정선거로 원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은 이승만의 영구집권을 꾀하기 위해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제한을 철폐한다는 내용을 주요골자로 하는 헌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헌안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민투표제 가미
△순수한 대통령제로의 환원
△경제제도의 자유경제체제로의 수정
△대통령 궐위 시 부통령의 승계제도
△초대 대통령에 한해 3선 제한 조항 철폐.

이 개헌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이승만 정권은 뉴델리 밀담설>을 조작, 극우반공의 본산인 민국당을 용공으로 몰아가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나, 11월 27일 국회에서 표결에 붙인 결과 재적 203명 중 가 135표, 부 60표, 기권 7표로 개헌 정족수인 136표에 1표가 미달, 부결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은 「국회의원 재적 203명의 2/3는 135.333…인데 0.333…이라는 소수점 이하의 숫자는 1인의 인간이 될 수 없으므로 사사오입하면 203명의 2/3는 135명이 된다」는 억지주장으로 이틀 후인 29일 부결선언을 번복, 개헌안의 가결을 선포했다.

사사오입개헌은 절차상으로도 정족수에 미달한 위헌적인 개헌이었을 뿐만 아니라. 1인의 종신집권을 보장한 개헌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헌정사상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이 개헌파동으로 손권배·김영삼·김재곤·김재황·김홍식·민관식·성원경·신정호·신태권·이태용·한동석·현석호·황남팔 등 자유당 소장파 의원들이 무더기로 탈당하는 한편, 민국당은 무소속 국회의원들을 규합, 호헌동지회>를 구성함으로써 민주당 창당의 계기를 만들었다.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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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25전쟁과 부산정치파동
6. 원조경제
7. 이승만 독재체제의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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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4월혁명과 제2공화국
9. 민중운동의 고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