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재

이상재

[ 李商在 ]

시대 근대/개항기
출생 - 사망 1850년(철종 1년) ~ 1927년
본관 한산(韓山)
이명 : 계호(季皓)
: 월남(月南)
직업 종교가, 사회운동가

종교가·사회운동가. 자는 계호(季皓), 호는 월남(月南), 본관은 한산(韓山). 충남 한산 사람. 81년 의 수행원으로 을 따라 을 시찰하고, 그때 동행했던 과 깊이 사귀어, 84년 홍영식이 우정국 총판이 되자 우정국 주사(主事)로서 인천에서 근무하다가 의 실패로 낙향했다. 87년 박정양이 초대 주미공사로 부임할 때 1등서기관으로 그를 따라 미국으로 갔으나, 청나라의 압력으로 이듬해 귀국했다. 그 후 우부승지(右副承旨) 등을 지내고, 학무국장으로 있을 때 신교육령을 반포하여 실시케 했다. 96년 총무국장으로 있으면서 등과 를 조직하여 그 부회장으로 를 여는 등 내정개혁과 민중계몽에 진력했다.

1902년 개혁당사건으로 3년간 복역하는 동안 기독교인이 되고, 1906년 (YMCA) 종교부 총무 및 교육부장을 겸임, 당시 참여교섭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21년 조선교육협회 회장이 되고, 북경에서 열린 만국기독교청년연합대회에 대표로 참석했으며, 23년 소년연합척후대(보이스카우트) 초대 총채가 되었다. 이듬해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하고, 27년 (新幹會) 초대 회장에 추대되었으며, 별세하자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장(社會葬)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