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러·일전쟁

[ 露日戰爭 ]

시대명 근대/개항기
연도 1904년 ~ 1905년

1904~05년에 만주와 한국의 지배들을 둘러싸고 와 이 벌인 전쟁. 후 중국은 열강에 의한 세계분할의 마지막 무대가 되어 중국에서 이권을 얻으려는 국제적인 대립이 격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는 (東淸鐵道) 부설권, 여순·대련 조차권을 손에 넣은 뒤 다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우위를 위협, 두 나라 사이에는 날카로운 대립이 일어나게 되었다.

당시의 정세는 일본이 1902년에 을 성립시켜 영·미·일을 축으로 하는 세력과 러시아·프랑스를 축으로 하는 세력간의 대치양상을 띠고 있었다. 조선에 있어 일본은 친로파인 민비를 살해하는 을 일으킴으로써 수세에 처하게 된 반면, 러시아는 한국에서 친로정권을 성립시킨 데 이어, 만주에 출병하여 러·청비밀협약을 맺고 만주의 영구적인 점령을 꾀하는 한편, 압록강 하류 용암포를 점령, 포대를 쌓고 극동총독부를 세워 남하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했다. 이에 심각한 위협을 느낀 일본은 1904년( 8) 2월 6일 러시아에 최후통첩을 발하고, 선전포고도 없이 8일에 일본해군이 인천의 러시아 군함을 격파하는 한편, 여순항의 러시아 함대를 기습 공격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어 10일 러·일 양국으로부터 선전이 포고되었다. 서전에서 일본군은 한국을 제압하고, 를 강요, 유리한 전략체제를 확립한 데 이어, 5월에는 중국 요동반도에 상륙, 남산(南山)·대련(大連)을 점령하고, 고전 끝에 이듬해 1월 여순을 함락시켰다. 이어 3월 봉천(奉天)회전에서 러시아군을 무너뜨린 일본은 해전에서도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승기를 잡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05년 1월 9일 러시아에서 <피의 일요일>에서 비롯된 군대반란과 농민폭등(제1차 혁명)이 일어나고 일본도 전력이 고갈되어, 8월 10일 미국대통령 루스벨트의 알선으로 두 나라는 포츠머스에서 강화회의를 열고 9월에 조약을 체결, 휴전이 성립되었다. 그 결과, 일본의 남만주 진출이 결정되고, 이것이 동시에 중국진출을 꾀하는 미국과의 대립을 부르게 되었다. 또한 러시아로부터 한국의 독점적 지배를 인정받음으로써 한국의 일본 식민지화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굳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