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경술국치

[ 韓日合邦 ]

시대명 근대/개항기

1910년(융희 4) 8월 29일 에 의해 한국의 통치권을 이 빼앗은 일. 일본에서는 <한국병합>이라고 한다. 1905년 (제2차 한일협약)으로 한국을 보호국화하고 통감정치를 실시했던 일본은 1909년 의사가 이토(伊藤博文)를 죽인 후부터 한국의 주권을 완전히 빼앗고 식민지화하려는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즉 1910년 6월 일본각의에서 <합병 후의 대한(對韓)통치방침>을 결정한 데 이어, 한국경찰권을 일본에 위임하는 각서를 조인하여 경찰권을 빼앗았으며, 에서는 경무통감부를 신설하고 헌병경찰제를 실시했다.

7월 12일 제3대 조선통감으로 임명된 데라우치(寺內正毅)는 본격적으로 합방공작을 진행, 8월 16일 총리대신 , 농공상대신 조중응(趙重應)을 통감관저로 불러 합방조약의 구체안을 밀의하고, 18일에는 이를 각의에서 통과시킨 다음, 22일 황제 앞에서 형식적인 어전회의를 거치게 한 후 그날로 이완용과 데라우치가 조인을 완료했다. 조인사실은 1주일간 비밀에 부쳐졌다가 마침내 8월 29일 이완용이 윤덕영(尹德榮)을 시켜 황제의 어새(御璽)를 날인케 함으로써 이른바 칙유와 함께 합방조약이 반포되었다. 이로써 조선왕조는 27대 519년 만에 멸망하고,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이후 35년간 역사상 유례없는 일제의 폭압과 착취를 당하게 되었다. 일본은 조약공포와 동시에 이라는 국호를 폐지하고, 통감부를 대신하여 를 개설, 초대총독에 데라우치를 임명했다. 그리고 합방에 공을 세운 이완용 등 친일파 75명에게 작위와 은사금을 주었다.

일본인의 한국침략 과정

일본인의 한국침략 과정
조약명(연대) 한국대표 일본대표 결과

한일의정서
(1904)

이지용

하야시
(林槿助)

내정간섭·군기지확보

제1차한일협약
(1904)

윤치호

고문정치

을사보호조약
(1905)

박제순

보호정치
통감부설치

한일신협약
(1907)

이완용

이토
(伊藤博文)

차관정치

한일합방조약
(1910)

데라우치
(寺內正毅)

한일합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