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국협회

황국협회

[ 皇國協會 ]

시대명 근대/개항기

1898년( 2) 에 대항하기 위해 정부에서 조직한 어용단체. 96년 을 중심으로 조직된 독립협회가 민중 속에 뿌리를 내리면서 세력을 신장, 수구파 정권을 위협하자, 찬성 조병식(趙秉式)이 들을 끌어모아 황국중앙총상회를 조직한 후 회장이 되었다. 얼마 후 황국협회로 이름을 바꾸고, 이유인(李裕寅)·홍종우(洪鍾宇) 등을 내세워, 독립협회 측에서 작성한 것처럼 꾸민 고시문(告示文)을 광화문과 에 내걸고, 「독립협회가 왕정을 폐하고 공화체제를 세우려고 민심을 선동하는 벽보를 붙였다」고 왕에게 거짓 고했다.

이리하여 · 등 독립협회 간부 17명이 검거되고 독립협회는 해산명령을 받았다. 정부의 집회금지명령에도 불구하고 회원들은 를 열고, 고시문 사건은 모함이라는 상소를 하는 등 끈질기게 항쟁하자, 고종은 독립협회 간부들을 석방하는 한편 황국협회의 조병식 일파를 잡아가두었다. 이때 피신한 황국협회 회장 이기동(李基東)은 전국의 보부상패를 소집해 만민공동회를 습격, 많은 부상자를 냈다. 99년 고종이 만민공동회의 지도자들을 체포, 최정식(崔廷植)을 사형, 을 종신형에 처하는 등 강경조치를 취해 독립협회는 해체되고, 뒤이어 황국협회도 자연 해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