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 李容九 ]
시대 | 근대/개항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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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사망 | 1868년(고종 5년) ~ 1912년 |
이명 |
자 : 대유(大有) 호 : 해산(海山) |
직업 | 친일파 거두 |
구한말의 친일파 거두. 자는 대유(大有), 호는 해산(海山), 23살 때 동학당(東學黨)에 입교. 2세 교주 에게 배워서 와 함께 고제(高弟)가 되었다. 1894년(고종 31) 혁명 후 교주 등이 잡혀 처형될 무렵 함께 투옥되었으나 곧 사면되었다. 그 후 동학당을 진보회(進步會)라 고치고, 1904년( 8) 의 권고로 (一進會)에 합쳤다. 때 일본군에 적극 협조했고, 1905년 손병희가 동학의 전통을 이어 (天道敎)를 포교하자 이에 맞서 (侍天敎)를 창설, 교주가 되었다. 일진회 총위원장·회장이 되어 국민들에게 을 제창하는 동시에, 고종황제, 총리대신 , 소네(曾禰) 통감 등에게 한일합방 건의서를 올리는 등 친일행동을 자행했다. 죽은 뒤 일왕(日王)으로부터 훈1등 서보장(瑞寶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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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구 사진 1868(고종 5)-1912. 조선 말기 일제 침략의 앞잡이. 친일민족반역자.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