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

윤치호

[ 尹致昊 ]

시대 근대/개항기
출생 - 사망 1865년(고종 2년) ~ 1945년
본관 해평(海平)
이명 : 좌옹(佐翁)
직업 정치가

구한말의 정치가. 호는 좌옹(佐翁), 본관은 해평(海平). 1881년(고종 18) 17살의 최연소자로 에 끼어 에 다녀온 후 개화사상에 눈을 떴다. 뒤에 미국에 유학하고, 83년 한미수호조약 비준 때 미국공사 푸트의 통역관으로 귀국했다. 이듬해 에 가담, 실패하자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95년에 돌아와서 총리대신 비서관을 거쳐 학부협판이 되고, 이듬해 7월 ·· 들과 를 조직, 98년 회장과 독립신문> 사장을 겸임했다. 그해 10월 15일 종로 네거리에서 를 열고 회장 자격으로 헌의 6조)>를 왕께 올려 자주독립을 열망하는 민중의 뜻을 대변했다. 1906년 ·윤효정 들과 대한자강회>를 조직, 회장이 되어 교육 사업에 힘썼으며, 10년 대한기독교청년회를 창설하고, 11년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어 이듬해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일제 말기에 원 의원을 지내다가 광복 후 친일파로 규탄받자 개성(開城)자택에서 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