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영

지석영

[ 池錫永 ]

시대 근대/개항기
출생 - 사망 1855년(철종 6년) ~ 1935년
본관 충주(忠州)
이명 : 공윤(公胤)
: 송촌(松村)
직업 학자

조선 말기의 학자. 자는 공윤(公胤). 호는 송촌(松村), 본관은 충주. 서울 사람. 1876년 의 수행원으로 에 갔던 스승 박영선(朴永善)으로부터 얻어 보고 느낀 바가 있어 부산에 있는 일본 병원 제생의원(濟生醫院)을 찾아가 종두법을 배운 후, 그해 겨울 충주 덕산면(德山面)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종두를 실시했다. 80년 수신사 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가서 두묘(痘苗)의 제조법과 독우(犢牛)의 채장법(採漿法) 등을 배우고 귀국, 서울에서 적극적으로 우두를 실시, 보급하기에 힘썼다.

83년 문과에 급제, 지평 등을 지낸 후, 87년 장령으로 정치의 부패를 논하다가 전라도의 신지도(薪智島)에 유배되었다. 92년 풀려난 후 형조참의·동래부사 등을 지내고, 99년 정부에 건의, 경성의학교를 세워 교장으로 10년간 지냈다. 1905년 를 상소, 학부 안에 국문연구소>를 설치케 하고 그 연구 위원이 되었다. 우리나라 종두법 시행의 선구자이며, 근대적 옥편인 를 집필하는 등 국문 연구에도 큰 공적을 남겼다. 그 밖에 저서로는 85년에 펴낸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