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왜적의 침입에 대비, 경상 우도에 배와 뱃사공을 더 두게 하다

[조선 중종]왜적의 침입에 대비, 경상 우도에 배와 뱃사공을 더 두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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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병조가 ˝왜노(倭奴)에게 화의(和議)를 허락한 뒤에 국경의 수비가 허소해질까 염려되어 경상·전라 양도의 변장(邊將)에게 방비하는 방책을 힘써 조치하라.˝고 유시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경상 우도 병마 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 유계종(柳繼宗)이 치계(馳啓)하기를, ˝거제도(巨濟島)·영등포(永登浦)·율포(栗浦)·지세포(知世浦)·조라포(助羅浦) 등의 진(鎭)은 외딴 섬일 뿐만 아니라 병세(兵勢)도 단약(單弱)하여, 만약에 적변(賊變)이 생긴다면 필시 보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상의 각포(各浦)는 거리가 한 번 쉴 참인데, 그 중앙은 세 갈래로 된 길목에다, 방어가 긴하지 않은 진해진(鎭海鎭)의 분방(分防)한 기병(騎兵) 80명과, 고성진(固城鎭)의 기병 50명을 옮겨 주둔시켜 별군관(別軍官) 김경례(金敬禮)·신종벽(申宗璧) 등을 보내어 이들을 거느리고 원병(援兵)을 삼은 것은 이미 금년 정월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가덕도(加德島)의 바깥쪽은, 적선(賊船)이 많이 와서 정박하는데, 이 섬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에 연대(烟臺)에 올라간 자가 훤히 내다볼 수가 없어서, 적이 오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변을 당하게 되므로, 신이 부임한 뒤에 처음으로 가덕도 주봉(主峯)에?따로 망보는 사람을 정해 두고, 만일 적선이 나타나거든 곧장 치계(馳啓)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섬에 변고가 생기면, 거제에서는 견내량(見乃梁)과, 남해에서는 노량(露梁)에서 구원하는 장졸(將卒)들이 제때에 건너갈 수가 있지만, 안부선(案付船) 2척만으로는 졸지에 건너가 구원하기 어려우니, 거제·고성·남해·곤양(昆陽)으로 하여금 각각 배 5척씩을 만들게 하고, 여기에 뱃사공을 더 배정하여 주소서.˝ 하니, 병조가 이에 의거해서 회계(回啓)하기를, ˝진해와 고성 역시 연해(沿海)의 방어지(防禦地)이므로, 뱃사공을 많이 뽑아내면 도리어 허소(虛疏)해질 것이니, 병사(兵使)로 하여금 각 진포(鎭浦)의 분방한 군사를 적절하게 뽑아내서 분정(分定)하되, 군사가 적어서 부족하면 그 여외 군사(旅外軍士)를 더 뽑아서 분정하여 방수하게 함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가덕도 주봉의 연대에는 군인을 따로 두어 망보게 하는 것이 좋은 계책일 듯하지만, 망보는 사람이 물을 건너 봉우리로 올라갈 적에 혹시라도 적선이 있어 그 뒤를 밟게 되면, 밖에서 올 원병(援兵)이 없으므로 모두 적의 손에 섬멸될까 두렵습니다. 거제와 남해는 모두 섬이라, 혹시 적변(賊變)이 있으면 배 2척으로는 졸지에 건너기가 어려울 것이지만 각 고을에다 분정한다면 그 폐가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니, 청컨대 수사(水使)로 하여금 10척을 만들게 해서, 견내량과 노량에 나눠 두어 원병들이 타고 건너가게 하시고 뱃사공은 관찰사로 하여금 마련해서 나누어 주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중종 8년 11월 2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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