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예종]여진을 크게 격파하다

[고려 예종]여진을 크게 격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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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 3년(1108) ○ 5월에 여진이 웅주성을 치기 무릇 27일에 병마령할(兵馬鈴轄) 임언?도순검사(都巡檢使)최홍정 등이 제장을 거느리고 군사를 나누어 굳게 지키며 날이 오래도록 싸우니, 인마(人馬)가 고달프고 힘이 지쳐 성이 위태하게 되었으므로 오연총이 문관(文冠)?김준(金晙)?왕자지(王字之)등으로 하여금 날랜 군사 1만을 거느리고 길을 넷으로 나누어 수륙으로 함께 나아가게 하였다. 오음지(烏音志)?사오(沙烏)의 두재 아래에 이르자, 여진이 먼저 재 위에 진을 치므로 우리 군사가 다투어 올라가 급히 쳐 1백 91급을 베니, 적은 달아나서 다시 진을 평양에 치려고 하였다. 우리 군사가 이긴 기세를 타고 힘껏 싸우니, 적은 크게 패하여 드디어 목책을 불 사르고 가므로 2백 91급을 베었다. 연총은 성으로 들어가, 성 안의 장사(壯士)가 원병(援兵)을 기다리지 않고 갑자기 나가 교전하여 살상을 많이 입었다 하여 이들을 차등 있게 처벌하였다. ○ 7월에 행영병마판관어사 신현(申顯)등이 주사(舟師)로 적선(賊船)을 쳐 20급을 베었다.
• 출처 : 『高麗史節要』 권7 예종 문효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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