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형조 좌랑 윤양이 아뢰다

[조선 선조]형조 좌랑 윤양이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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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조 정랑 윤양(尹暘)이 아뢰기를, ˝신이 주사(舟師)에게 선유(宣諭)할 일로 통제사가 주둔한 전라도 고금도에 내려가 임금의 말씀을 선포하니 모든 장수가 다 기뻐하여 춤추며 태평 시대의 성대한 예우를 받았다 하여 감격해 마지않았습니다. 그리고 소청한 일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수군이 오래도록 번을 서다가 번을 교대하려 하면 수효가 적어 인원을 채우기 어려우니 조정에서 특별히 조치하여야 보전할 수 있을 것이며, 또 변란 이후 본역(本役)을 도피하기 위해 피살되었다 핑계하거나 세력이 있는 집에 투탁(投託)하거나 관속(官屬)이라고 이름을 빌려 다른 고을에 분산해 있으니 반드시 엄중히 추쇄하여 본역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군기(軍器) 등 물자가 계속 접전하느라 분실되어 남은 것이 없는데 그 중에 총통(銃筒)·분화통(噴火筒)·각궁(角弓)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현재 각 고을이 분탕되어 마련해내기가 어려우니 별도로 준비하여 충분한 수량을 내려 보내 전투에 쓸 수 있도록 해 달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량(露梁)의 전공은 모두 이순신이 힘써 싸워 이룬 것으로서 불행히 탄환을 맞자 군관 송희립(宋希立) 등 30여 인이 상인(喪人)의 입을 막아 곡성(哭聲)을 내지 않고 재촉하여 생시나 다름없이 영각(令角)을 불어 모든 배가 주장(主將)의 죽음을 알지 못하게 함으로써 승세를 이루었다. 저 손문욱(孫文彧)은 하찮은 졸개로 우연히 한 배에 탔다가 자기의 공으로 가로챘으므로 온 군사의 마음이 모두 분격해 한다.˝ 하였습니다.˝ 하니, 각 해사(該司)에 말하라고 전교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선조 32년 2월 8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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