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종]형조 판서 장붕익이 전선과 거북선 개조에 대한 것을 아뢰다

[조선 영종]형조 판서 장붕익이 전선과 거북선 개조에 대한 것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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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대신과 비국 당상(備局堂上)을 인견하였다. 형조 판서 장붕익(張鵬翼)이 아뢰기를, ˝지난 겨울에 별군직(別軍職) 윤필은(尹弼殷)이 상소하여 전선(戰船)의 제도를 바친 것으로 인하여 신이 왕명을 받들고 이삼(李森)과 더불어 전선과 거북선[龜船]을 개조하였는데, 전선의 2층 위에 장식이 너무 무거워서 바람을 만나면 제어하기가 어렵겠으므로 위층의 방패(防牌)를 별도로 제도를 만들어서 때에 따라 눕혔다 세웠다가 하고, 선두(船頭)에는 곡목(曲木)을 덧붙여서 그 모양이 마치 오리의 목과 같으나 조금 뽀족하여 비록 풍랑을 따라서 나가더라도 뚫고 지나가는 것이 아주 빠르며, 혹시 암석에 부딪히더라도 곡목이 먼저 파손되기 때문에 매우 편리합니다.˝ 하니, 그 제도의 모형을 내전으로 가지고 들어오게 한 뒤에 비국(備局)에 내려 주라고 명하였다. 장령 김정윤(金廷潤)이 전계를 거듭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고, 한세유(韓世愈)·장응규(張應奎) 등의 사건은 정계하였다. 또 아뢰기를, ˝어제 내시사(內試射)에서 합격하지 못한 자에게 특별히 급제(及第)를 내려 주라고 명하였는데, 어찌 충신의 후손과 조카라고 하여 함부로 규격(規格) 이외의 은전(恩典)을 베풀 수가 있겠습니까? 청컨대 이한범(李漢範)에게 급제를 내려준 명을 도로 거두도록 하소서.˝ 하였으나, 임금이 윤허하지 않았다. 이한범은 바로 이순신(李舜臣)의 후손으로서 이봉상(李鳳祥)의 조카였다. 헌납 서명형(徐命珩)이 전계를 거듭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영종 11년 1월 20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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