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좌의정 이항복이 왜적의 침입에 대한 방비책을 논하는 차자를 올리다

[조선 선조]좌의정 이항복이 왜적의 침입에 대한 방비책을 논하는 차자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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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이항복(李恒福)이 차자(箚子)로 아뢰었다. ˝신은 상심(傷心)이 누적되어 질병이 되었고 그 질병이 오래되어 고질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년을 누워 있었으므로 근해(筋骸)와 골절(骨節)이 지칠 대로 지쳐 일어나지 못한 지가 이미 9개월이나 되었습니다. 지난번 사은(謝恩)한 뒤 다시 소명(召命)을 받들고 부축을 받으면서 예궐하였었는데 오랫동안 누워 있다가 갑자기 기력(氣力)을 쓴 탓으로 노열(勞熱)이 가중되어 식음을 전폐한 채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비변사 낭관이 성교(聖敎)를 전하여 왔는데 몸져 누워 있는 상태에서 받들어 다 읽기도 전에 성려(聖慮)의 미치신 바가 정신(廷臣)들이 천만번 계책을 세워도 이를 수 없는 데에서 나온 것임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는 변신(邊臣)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지극한 훈계인 것입니다. 신이 경인년 사이에 비변사 낭청으로 있었는데 그때 적추(賊酋) 수길(秀吉)이 우리에게 신사(信使)를 요구하면서 우리나라의 반민(叛民) 사화동(沙火同)과 오도(五島)의 왜적으로서 누차 우리의 변경을 침략한 바 있는 신삼보라(信三甫羅)·긴요시라(緊要時羅)·망고시라(望古時羅) 등 세 왜적을 박송(縛送)하여 왔고, 이어 포로로 잡혀갔던 남녀 1백 30여 구(口)를 다시 쇄환(刷還)시켰습니다. 그 가운데 김대기(金大璣)·공태원(孔太元) 등 2인은 자못 영리하여 문자(文字)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오도(五島)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하면서 그 섬의 두추(頭酋)의 소위(所爲)와 토지의 비척(肥瘠)과 인민의 다소와 풍속 형세에 대해 매우 상세히 이야기하였으므로 지금도 기억 할 수 있습니다. 또 을미년, 병신년 사이에는 양 책사(楊冊使)의 접반사로 해상(海上)을 왕래하면서 제장(諸將)과 변민(邊民)을 만날 적마다 해상의 형세에 대해 문의하였습니다. 이에 의하면 오도(五島)는 대마도 오른쪽에 있는데 땅도 작고 토지도 척박하며 인호(人戶)는 1천도 못되고 백성들은 항업(恒業)이 없어서 판매(販賣)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출몰하면서 노략질하는 것이 다른 왜적보다 더욱 극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시 우리 변경에서 노략질하는 영적(零賊)들의 태반은 이 섬에 사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침구해 오는 길은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오도에서 동남풍을 타고 삼도(三島)에 이르러 유숙(留宿)한 뒤 선산도(仙山島)를 지나 곧바로 고금도(古今島)와 가리포(加里浦) 등처에 도달되는 길이고, 대마도에서 동북풍을 타고 연화도(蓮花島)와 욕지도(浴知島) 사이에 이르러 유숙한 뒤 곧바로 남해(南海)의 미조항(彌助項)·방답(防踏) 등처에 도달하는 길입니다. 이는 왜적이 전라도를 침구하는 익숙한 길인데 그 사이의 수로(水路)가 매우 멀어서 순한 바람을 탄다 하더라도 모두 아침에 출발하여 저녁에 도착하지는 못하고 반드시 바다 가운데 있는 섬들 사이에서 유숙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연일 좋은 바람이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바다에 정박하고 있던 적선이 다음날 풍세가 순하지 못하면 또다시 순풍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른바 연화도와 욕지도는 바로 경상 우수영(慶尙右水營)의 연대(煙臺)와 마주 바라다 보이는 섬으로 적선이 왕래하는 숫자를 분명하게 셀 수 있습니다. 형세가 이러하기 때문에 오도의 왜적이 삼도와 선산도를 지나서 고금도(古今島)를 침범할 경우는 늘 뜻밖에 나오기 마련이지만 대마도의 왜적이 연화도와 욕지도를 지나 남해 등처를 침범할 경우에는 우리에게 발각이 됩니다. 그러나 대마도서 부산에 닿을 경우 정동풍을 만나기만 하면 한번 돛을 올려서 금방 도착하게 됩니다. 부산에서 대세(大勢)로 여겨 의지하고 있는 것은 우수영뿐인데 수영과 대마도는 향배(向背)의 형세가 다르기 때문에 바람의 역순(逆順)도 이에 따라 구별됩니다. 왜적이 순풍을 타고 부산을 향하게 되면 수영 쪽에서는 역풍이 되는데 더구나 몰운대(沒雲臺)·해운대(海雲臺) 아래에는 파도가 높고 물결이 사나와 배를 운행하기가 불편하여 갑자기 급한 일을 당하게 될 경우 서로 구제하기가 어렵습니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선조 33년 1월 28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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