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정부

한성정부

[ 漢城政府 ]

시대명 근대/일제강점기

직후 인천 만국공원에서 국민대회의 이름으로 조직·선포된 정부. 1919년 4월 23일 24인의 국민대회 13도 대표자들이 <국민대회 취지서>를 발표하고, <임시정부 선포문>을 당시 세계적 통신기관인 연합통신(聯合通信)을 통해 국내외에 알렸다. 공화제를 채택한 한성정부는 집정관총재(執政官總載)에 , 국무총리에 이동휘를 각각 추대하고, 정부조직은 7부 1국으로 했다. 이승만은 국내의 13도 대표자 이름으로 조직된 한성정부가 노령정부(露領政府)나 상해임시정부보다 정통성을 가진다고 해서 집정관총재로서 워싱턴에 사무실을 개설했다. 그 후 3개의 임시정부 단일화 협상에서 한성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한 상해임시정부의 수립이라는 이승만의 단일 정부 수립원칙이 합의되어 상해 임시 정부가 성립되었다.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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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1운동과 임시정부
한성정부 지금 읽는 중
3. 제국주의열강의 대립
4. 문화정치와 친일파 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