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영
[ 李會榮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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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사망 | 1867년 ~ 1932년 |
이명 | 호 : 우당(友堂) |
직업 | 독립운동가 |
독립운동가. 호는 우당(友堂). 부통령을 지낸 의 형. 1908년(융희2) 장훈(長薰)학교를 설립하고, · 등과 함께 를 조직, 무실역행(務實力行)을 행동강령으로 독립운동에 힘썼다. 10년 (大倧敎)에 입교하고, 그해 12월 만주 유하현 삼원보로 망명,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 그 후 만주 여러 곳과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북경·상해 등지를 떠돌며 독립운동에 몸을 바쳤으며, 21년 와 함께 무정부운동을 벌이며 분열된 임시정부의 단합을 위해 조정 역할을 맡아 했다. 32년 만주의 동지들과 연락하기 위해 상해를 떠나 만주로 가던 중 대련 앞바다에서 경찰에 붙들려 혹독한 고문 끝에 목숨을 잃었다. 그의 주검은 대련 시외의 공동묘지 단재 신채호의 곁에 묻혀졌다. 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