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암리 학살사건

제암리 학살사건

[ 堤岩里虐殺事件 ]

시대명 근대/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수원(지금의 화성시) 제암리에서 주민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한 만행사건.

1919년 4월 15일 아리다(有田俊史) 육군중위가 이끄는 한 무리의 일본군경은 앞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제암리에 와서 기독교도·도 약 30명을 교회당 안으로 몰아넣은 후 문을 모두 잠그고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이때 한 부인이 어린 아기를 창밖으로 내놓으며 아기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일본군경은 아기마저 잔혹하게 찔러죽이고 말았다.

이 같은 만행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일본군은 교회당에 불을 질렀으며, 바깥으로 나오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까지 모두 불에 타죽게 만들어 무고한 양민 28명을 학살하고 다시 부근의 채암리(采岩里)에 가서 민가를 방화, 31호를 불태우고 39명을 학살했다. 일제의 이같은 만행에 분노한 선교사 스코필드는 현장으로 달려가 그 참혹한 광경을 그대로 사진에 담아 <수원에서의 일본군 잔학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 미국으로 보내 여론화했다. 82년 문화공보부는 제암리 학살현장의 유물발굴과 조사에 착수, 그해 10월 21일 이 지역을 사적 제299호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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