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녕

이동녕

[ 李東寧 ]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출생 - 사망 1869년 ~ 1940년
이명 : 석오(石吾)
직업 독립운동가, 정치가

독립운동가. 호는 석오(石吾). 충남 천안 사람. 1892년(고종 29) 시에 합격했으나, 05년 이 체결되자 북간도로 건너가 (李相卨)·여준(呂準) 등과 용정(龍井)에서 서전의숙(瑞甸義塾)을 설립, 교포자제들의 교육에 힘쓰다가, 1907년 재정난으로 학교의 문을 닫고 귀국, · 등과 함께 (新民會)를 조직하고, 10년 남만주에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설립, 초대소장으로 독립군 양성과 교포의 교육에 힘썼다. 13년에는 (大倧敎)에 입교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勸業會)를 조직, 교포들의 협동정신을 높였으며, 19년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내무총장을 지낸 후, 24년 국무총리. 27년 국무위원 주석을 겸했다.

32년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거사로 경찰의 검거 선풍이 상해를 휩쓸자 중국 강소성 가흥(嘉興)으로 피신, 35년 김구 등과 한국국민당을 조직, 당수가 되었으며, 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자 임시정부의 외곽단체로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의 결성에 참여, 항일전에 투신했다. 이듬해 정부가 중경(重慶)으로 옮길 때 임시정부를 이끌고 장사(長沙)로 갔다가 사천성에서 병사, 임시정부 국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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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1운동과 임시정부
이동녕 지금 읽는 중
3. 제국주의열강의 대립
4. 문화정치와 친일파 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