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랑37호무덤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낙랑37호무덤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고분 · 왕릉>무덤
유물유적시대 철기
행정구역 평양시>낙랑구역
등급 준국보급(보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보존급 제624호

평양시 낙랑구역 정백일동에 있는 덧널무덤. 약 기원전 1세기 후반기의 유적이다. 정백동37호무덤이라고도 한다. 무덤은 두개의 무덤구덩이가 남쪽과 북쪽에 각각 동서로 나란히 놓인 부부무덤으로서 덧널으로 되어 있다. 북쪽 곽이 남자의 것이고 남쪽 곽이 여자의 것이다.

덧널들은 외곽과 내곽으로 되어 있는데 남자곽의 외곽은 동서길이 3m, 남북너비 2.1m, 높이 0.4m이고 내곽은 길이 2.3m, 너비 0.8m, 높이 0.3m이다. 여자곽의 외곽은 동서길이 3m, 남북너비 1.2m, 높이 0.65m이고 내곽은 동서길이 2.1m, 남북너비 0.8m, 높이 0.57m이다. 내곽들 안에는 각각 작은 껴묻거리곽이 있고, 특히 남자곽에는 주검의 곽만한 크기의 껴묻거리곽이 덧붙어 있었다.

무덤짜임새에서 특징은 부부무덤이라는 것과 부부의 곽이 약간 사이를 두고 따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며 주검곽에 잇대어 껴묻거리곽이 있는 것 등이다. 무덤짜임새의 이러한 특징은 마지막 시기의 덧널무덤들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것으로서 이른 시기의 귀틀무덤들의 짜임새와 잘 통한다.

낙랑37호무덤은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서북지방의 덧널무덤들 가운데서 규모가 가장 크고 껴묻거리의 종류와 가지 수도 특별히 많고 그 품위도 대단히 높다.

이러한 점들은 무덤의 주인공이 당시 이 고장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한 정치세력의 우두머리급에 속한 자였음을 보여준다. 무덤에서는 또한 이 무덤의 축조 연대를 알 수 있게 하는 ‘지절 4년 2월’(기원전 66년)이라는 기년명이 있는 칠곽도 나왔다.

이것은 이 유적을 비롯한 덧널무덤의 축조시기를 밝히는데서 매우 귀중한 자료로 된다. 이렇듯 이 유적은 덧널무덤의 마지막시기인 기원전 1세기 후반기 평양지방의 문화발전 정황과 기원전 1세기 말 경부터 시작된 귀틀무덤과의 계승관계를 밝힐 수 있게 한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유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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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어

정백동37호무덤(貞柏洞三十七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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